“‘임을 위한 행진곡’은 오늘날 제가 작곡가로 활동할 수 있는 근거가 된 노래입니다. 당시 ‘삼촌’이라 불렀던 이들의 무릎에 앉아 이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와 세계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관현악곡 서곡의 작곡 위촉을 맡은 황호준(47) 작곡가는 감회가 새롭다고 소회를 밝혔다.

광주문화재단이 24일 마련한 ‘임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 기자간담회’ 차 광주를 찾은 황 씨를 만났다. 그는 “1980년을 전후로 광주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기억은 아무리 객관화하려 해도 여러 기억이 주관의 영역에 얽혀 있어 떨쳐버릴 수 없다”고 밝혔다.

황 씨는 광주예고와 중앙대 한국음악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국악관현악, 실내악, 오케스트라 등의 작·편곡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음악활동을 펼쳤다.

큰 키에 준수한 용모의 그는 어디선가 한번은 본 듯한 익숙한 모습이었다. 얼마 후 그가 소설가 황석영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시대를 거슬러 젊은 시절의 황석영을 마주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또한 그는 오월을 다룬 대표 소설 ‘깃발’의 작가 홍희담의 아들이기도 했다.(황석영과 홍희담은 오래 전 이혼을 했다)

황호준 씨는 “유년 시절의 광주 기억을 붙들고 살아온 지 벌써 40여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며 “작곡의 기회에 대해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흔쾌히 수락했지만 막상 곡을 써내려가면서는 적잖은 중압감에 짓눌렸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부전자전을 뛰어넘는 어떤 운명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는 듯 했다. 아버지(황석영)는 ‘임을 위한 행진곡’ 작사를 했고(백기완의 ‘묏비나리’ 일부 차용해 가사를 붙임), 세월이 흘러 아들은 노래를 새롭게 해석해 관현악 서곡으로 만드니 말이다.

“아버지가 77년 무렵 ‘장길산’을 집필하기 위해 해남으로 가셨어요. 이후 78년 광주로 이사를 와 양림동에서 잠시 살았어요. 81년에 다시 운암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당시의 집터는 지금의 문예회관이 들어선 곳입니다.”

황 씨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비교적 소상하게 이야기했다. 당시 초등학생 뇌리에 박힌 장면들은 어제의 일처럼 또렷했다. 그는 “운암동 2층 집에서 노래 녹음을 하던 날이 특히 기억난다”며 “평소 아버지는 2층 집필실에서 글을 쓰셨는데, 그날만은 사람들을 모두 2층으로 올라오게 했다”고 덧붙였다.

무거운 커튼이 쳐지고, 내부의 소음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완벽하게 ‘방음’을 한 뒤 녹음이 시작됐다. 노래는 장엄했고, 무언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정서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한다.

이번 작곡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도 궁금했다. “아버지는 늘 제가 한 사람의 예술가로 성장하기를 바랐다”며 “그것이 예술을 매개로 한 부자의 정이었다”고 웃었다.

“아버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 당시에는 당대의 역할이 이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오늘에는 현재의 예술과 관객을 위해 담아내야 할 정서가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원곡에 짓눌리지 말고 자유롭게 지금의 정서에 맞는 재해석을 했으면 한다고 조언을 하셨죠.”

그는 고등학교 재학시에 전교조와 관련 광주지역협의회라는 학생 조직을 만들었다가 안기부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 이후로 자퇴를 당했고, 이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입학한다. 그의 삶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자장은 깊숙이 드리워져 있었다.

한편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문화재단 김윤기 대표, ‘임을 위한 행진곡’ 원 작곡가인 김종률 사무처장, 제작위원장 김승일 조선대 명예교수, 김희정 ACC공연사업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