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직업은 ‘방화수’(fireman). 불을 지르는 사람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집집마다 화재 예방 시설이 돼 있고, 집도 불연성 소재로 지어져 예전 같이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이 필요 없게 됐다. 대신 그에게는 집에 감춰진 책을 찾아내 불태우는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방화서장 비티는 왜 책을 불태워야 하는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책이란 옆집에 숨겨 놓은 장전된 권총이야. 태워 버려야 돼. 무기에서 탄환을 빼내야 한다고.”

10여 년간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업무를 수행하던 몬태그는 어느 날, 한 할머니의 다락방을 수색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언뜻 본 문장 한 구절이 그의 뇌리에 박혔다. “오후의 태양 빛 안에서 시간은 깊은 잠 속에 빠져든다.” 19세기 스코틀랜드 알렉산더 스미스 시인의 시구였다. 그는 책을 불태우는 일을 하며 책을 한 권씩 몰래 빼돌려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몸담은 사회의 모순에 서서히 눈을 뜨게 된다.

미국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1920∼2012)가 1953년에 발표한 소설 ‘화씨(Fahrenheit) 451’의 내용이다. 화씨 451도는 책을 불태울 때의 온도로, 섭씨로 환산하면 232.8℃에 해당된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소 황당하다. 그러나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와 1933년에 금서 2000권을 불태운 나치의 실례를 감안하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얘기다.

지난 23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었다. 한국 독서 실태는 암담하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59.9%다. 이는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10명 중 4명이라는 의미이다. 올해는 ‘책의 해’이기도 하다. ‘화씨 451’에서 상상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비켜갈 수 있는 묘안이 절실하다.

저자는 출간 5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지진이 일어나 온전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두 채밖에 없다고 가정할 때 한 건물은 병원, 다른 건물은 도서관이 될 것”이라면서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덧붙인다. “독서란 우리네 삶의 중심이에요. 도서관은 바로 우리의 두뇌죠. 도서관이 없다면 문명도 없습니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