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그는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하며 플라톤 이래의 로고스 중심 철학을 해체했다. 또한 신과 인간, 정신과 육체, 인간과 동물, 이성과 감성,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 등 상하 개념의 ‘2항 대립’ 구조는 설정 자체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모든 것을 상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사상 체계를 구축했다. 해체주의 사상은 예술·문학·건축 그리고 페미니즘 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식민지 알제리 태생으로 유대인이었던 데리다는 알베르 카뮈처럼 축구 선수를 꿈꾸는 소년이었다. “어린 시절 어두워질 때까지 축구를 했다. 나는 프로 선수가 되고 싶었다.” 그는 힘들 때, 외로울 때, 차별받을 때 공을 차며 울분을 달랬다고 한다. 10대에 어두워질 때까지 축구와 함께했으니 대학 입시에 낙방하기 마련이었다. 바칼로레아(대학 입학 자격고사)에 떨어지고 재수를 한 데리다는 축구보다 학문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다. 하지만 선수의 꿈을 아쉬워하며 또 하나의 명언을 남겼다. “터치라인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터치라인’을 그리며 살아간다. 그것은 직업의 영역이기도 하고 생활의 기준이 되기도 하며 삶의 목표가 될 수도 있다. 스포츠팬들에겐 응원하는 팀의 성적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승부는 터치라인 안쪽에서 일어나지만 승부에 따른 영향은 바깥쪽에서 더 크게 작용하고, 관중과 팬이 없는 경기는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6·13 지방 선거에 가려져 있지만 러시아 월드컵도 이제 5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신태용호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32개국 중 객관적인 전력에서 가장 하위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종 예선에서부터 평가전까지 잇따른 졸전에 팬들은 “투혼과 정신력이 사라졌다” “F조에서 3전 전패할 것이다”라는 비판과 함께 어두운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대표 팀은 다음 달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을 갖는다. 6월 1일엔 보스니아와의 평가전과 함께 러시아 월드컵 출정식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남은 평가전을 통해 조직력을 다지고 전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터치라인 밖에서 일어나는 온갖 우려를 ‘해체’해 주었으면 한다.

/유제관 편집1부장. 부국장 jk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