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해진 KIA 타이거즈 마운드에는 ‘느림’이 있다.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KIA 마운드의 움직임은 경쾌하다.

지난 시즌 ‘샛별’ 임기영이 부상으로 빠져있지만 한승혁이라는 ‘깜짝 카드’가 선발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시즌 마당쇠 역할을 해줬던 박진태의 입대로 인한 사이드암 공백은 ‘예비역’ 박정수가 메워주고 있다. 그리고 사연 많았던 불펜에서는 ‘맏형’ 임창용이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이들은 지난 10일 한화 이글스와 원정경기에서 나란히 출격했다. 팀이 3-4로 아쉽게 패했지만 이들은 깊은 인상을 남기는 피칭을 했다.

2677일 만에 선발로 나온 한승혁은 89개의 공으로 5.2이닝을 3실점으로 막으며 박수를 받았다. 호잉에게 두 개의 홈런을 내준 게 아쉬웠지만, 볼넷을 두 개로 묶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시즌보다 일찍 마운드에 투입되고 있는 임창용은 이날도 1이닝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0의 행진’을 이어갔다. 무사 만루에 투입된 박정수는 연속 삼진에 이어 포수 땅볼로 베이스를 가득 채운 주자들의 발은 묶었다.

세 사람의 올 시즌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커브’다.

커브는 가장 느린 변화구 중 하나다. 리그에서 가장 빠른 볼을 던지는 한승혁은 올 시즌 커브를 빼 들었다.

2016 마무리캠프에서부터 커브를 준비했지만 지난 시즌에는 실전에서 던져보지 못했다. 올 시즌에는 첫 등판부터 커브를 선보이면서 상대 타자들의 리듬을 뺏었다.

10일 한승혁이 기록한 직구 최고 구속은 155㎞ 여기에 116㎞의 커브를 던지면서 구속 차는 무려 40㎞ 가량 났다. 포크와 슬라이더에 더 느린 커브가 추가되면서 타자들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리그를 대표하는 파이어볼러 한승혁은 스피드만으로는 매년 더 강해지는 타자들을 상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느림’을 선택했다. 반대로 느림을 통해 강속구가 더 두드러지는 효과도 있다.

‘뱀 직구’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피칭을 하는 24년 차 베테랑 임창용도 커브를 묶어 힘 있는 타자들과 타이밍 싸움을 하고 있다.

임창용은 지난 스프링캠프에서 커브에 공을 들였다. ‘3할 군단’ 팀 후배 타자들의 감탄사를 이끌어 낼 정도로 커브의 움직임이 좋았다.

그리고 임창용은 올 시즌 커브 비율을 높여 마운드에서 호흡을 조절하고 있다.

박정수의 주무기 역시 커브다. 직구(36%)보다 커브(54%) 비율이 더 높다.

타고난 손가락 감각을 바탕으로 회전과 각을 키우는 커브가 일품이다. 공이 우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커브를 바탕으로 배짱 있는 승부를 하면서 박정수는 불펜진에서 가장 많은 이닝(10일 현재 13.2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느림에 느림을 더한 정용운과 문경찬도 있다. 좌완 정용운은 100㎞ 초반대, 문경찬은 KIA에서 가장 느린 90㎞대의 ‘슬로 커브’를 구사한다.

매년 타자들이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파워까지 업그레이드되면서 투수들은 생존을 위한 연구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올 시즌 KIA 마운드에는 ‘커브’가 화두가 되고 있다.

/김여울기자 wo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