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에 발표된 전영택(1894∼1968)의 ‘화수분’은 일제 강점기 기층민의 삶을 형상화한 소설이다. 남의 집 행랑살이를 하는 어느 지게꾼을 통해 당대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려 냈다.

서울에서 날품팔이를 하는 주인공 화수분은 가난하지만 심성은 더없이 착하다. 어느 날 시골의 형님이 발을 다쳐 추수를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화수분의 부인은 보름이 지나도 남편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자, 어린 딸을 업고 남편을 찾아 나선다. 화수분 또한 가족이 걱정이 된 나머지 서울로 향하다 낯선 길가에서 아내와 딸이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추운 겨울 날씨였지만 돈이 없었던 화수분은 별 수 없이 아내와 딸을 껴안고 길에서 밤을 새운다.

“이튿날 아침에 나무 장사가 지나가다 그 고개에 젊은 남녀의 껴안은 시체와 그 가운데 막 자다 깬 어린애가 등에 따뜻한 햇볕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어린것만 소에 싣고 갔다.”

소설은 이렇듯 어느 한 인물의 비극적 삶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다.

그러나 더욱 비극적인 것은 화수분이라는 이름이 주는 아이러니다. ‘화수분’이라는 말은 ‘재물이 계속 나오는 보물단지’를 일컫는다. 주인공 이름에 평생 재물의 부족함 없이 살라는 부모의 바람이 담겨 있음은 불문가지다.

한편 ‘화수분’의 어원을 보면 중국의 고사 ‘하수분’(河水盆)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중국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황하의 물’을 길어다 큰 구리 동이를 채우게 했다. 인부들이 아무리 퍼마셔도 물은 줄지 않고 되레 불어났던 모양이다.

화수분이라는 말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쓰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화수분 혐의’가 대표적이다. 국정원 뇌물, 다스, 사찰, 기록물법 위반 등 파면 팔수록 범죄 혐의가 늘어나는 형국이다. 그의 재산도 ‘화수분’인지 계속해서 검은돈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짧은 설 연휴가 끝났다. 사람들은 올해는 작년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비단 재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평안과 화합 같은 가치적 관점의 ‘화수분’으로 전이됐으면 싶다.

/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