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찬 구름 속 미세한 물방울이 응결돼 낙하하는 자연 현상이다. 똑같은 눈이라 할지라도 보는 이가 서 있는 장소와 처한 상황에 따라 제각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걸어온 인생의 결에 따라서 시인들의 묘사도 저마다 다르다.

먼저 백석(1912∼1996)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찾아 읽어 본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한밤중에 함박눈이 쏟아지는 정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김효근(59)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대학 시절 작사·작곡해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을 차지한 가곡 ‘눈’도 눈 내리는 날 많이 찾아 듣는 곡이다.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욱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곡성군 입면 서봉리 탑동마을 할머니 시인들이 펴낸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꺼내 본다. 60∼80대 할머니들은 마을 내 작은 도서관에서 김선자 관장의 지도를 받으며 한글을 깨쳤다. 그리고 시를 쓰게 됐고, 나아가 두 권의 시집까지 내게 됐다. 당초 ‘시가 뭣인고?’ 하던 할머니들도 어느새 자신의 인생을 바느질하듯 한땀 한땀 시 언어로 풀어냈다.

“밤새 눈이 와/ 발이 꽉 묶여버려/ 오도 가도 못하겠네/ 어쩔까/ 이 눈이 쌀이라믄 좋겠네.”(박점례 작 ‘겨울’) “눈이 사뿐사뿐 오네/ 시아버지 시어머니 어려와서/ 사뿐사뿐 걸어오네”(김점순 작 ‘눈’) 보릿고개를 겪었고, 시집살이를 해 본 할머니들만이 떠올릴 수 있는 시가 아닐까. 오랜 시간 문학 수업을 해 온 시인들의 작품과 다른 울림을 준다. ‘쌀’과 ‘사뿐사뿐’이라는 단어 속에 할머니 시인의 고단했던 삶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지난 9일 개막해 17일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북한의 참가로 인해 곧 전쟁이 터질 듯 벼랑 끝으로 치닫던 한반도 위기도 평화 모드로 바뀌었다. 남북 선수단 공동 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경기는 남북한 간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이 경색된 남북한 대치 국면에 해빙 물꼬를 트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으면 좋겠다. 평창의 눈이 모든 갈등을 덮더니, 또 녹이고 있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