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다른 유권자들과 기본적인 유대감을 공유할 때만 민주적 선거의 결과에 승복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유권자들의 경향이 나와 매우 다르다면, 그리고 그들이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에게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투표에서 100대 1로 져도 그 평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중략) 민주적 투표는 기본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 불일치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세계적·인류적 규모의 거대 담론에 대해 통찰력 있는 견해를 제시해 온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투표론’이다. 그의 베스트셀러 ‘호모 데우스’에 나와 있는 글인데, 여러 장에 걸쳐 해설이 되고 있지만 ‘투표가 진정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공동의 가치를 지향해야 하며, 분명한 연대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최근 극심한 내분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분당을 눈앞에 둔 국민의당이 ‘반쪽짜리’ 전당원 투표를 치르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가치관과 이해관계가 전혀 다른 구성원 간에 투표를 통한 갈등 해소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든다. 같은 맥락에서, 온 나라가 영남과 호남,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갈등을 빚어 온 한국의 기존 정치 구도에서 바라보자면, 촛불 혁명 이전 치러진 대부분의 선거는 ‘민주적 의견 수렴의 장’이라기보다는 ‘어느 세력이 한국의 패권을 손에 쥐는가’를 결정하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과 다름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남과 호남, 진보와 보수라는 서로 다른 세력들 사이엔 ‘지역감정, 가치관, 시대정신’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장벽이 존재해 왔던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 호남 소외가 해소되고 광주 5·18 진상이 드러나는 등 지역감정이라는 칸막이는 서서히 무너져 가는 분위기다. 또 신 4당 체제가 들어서면서 진보와 보수를 양분했던 칸막이도 경계가 해체되어 가는 모습이다.

6·13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의 정치는 온 국민에게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고 설득해 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선거라는 제도가 ‘민주적 투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또 다른 폭력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