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진 킹. 단식·복식·혼합복식을 합쳐 무려 39개의 그랜드슬램대회에서 우승한 여자 테니스의 전설이다. 그녀는 남자 선수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상금을 받자 대회 출전을 보이콧 하고 세계여자테니스협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인종·성별·종교 차별 논란이 뜨거웠던 1973년. 빌리는 “여자가 코트에 없으면 공은 누가 줍나?”라는 막말을 일삼던 전 윔블던 남자 테니스 우승자 바비 릭스와 남녀 성대결 이벤트를 벌인다. 1억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 열광한 세기의 대결.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이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이 경기의 결과는 많은 사람의 예상과 달리 빌리의 3대0(6-4, 6-3, 6-3) 완승으로 끝났다. 빌리는 경기 후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난 그저 공정한 대우를 원해요”라고 짧게 말했다.

호주오픈 테니스에서 4강 신화를 이룬 정현도 문재인 대통령의 축전을 받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말에 테니스 선수로서 깊이 공감한다”고 답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공평하고 올바름이라는 의미의 공정. 공정한 경쟁은 스포츠 경기를 역동적이게 하고 사회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 정부가 공공기관 채용 비리를 조사한 결과 전체 기관의 80%에서 부정 채용 비리가 드러났다. 실력이 아닌 빽과 연줄을 통한 반칙과 불법 행위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 준다.

올림픽 선수 선발에도 공정성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최근 노선영 선수 사태와 심석희 선수 폭행 사건도 내 사람 선발하기, 내 선수 성적 올리기에 집착한 빙상연맹의 뿌리 깊은 파벌주의가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오죽하면 소치올림픽에서 우리 국민이 한국 선수가 아닌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를 응원했겠는가. 심판 판정에도 논란이 많았다. 지난 대회에서 김연아는 완벽한 경기를 하고도 그렇지 못한 러시아 선수에 금메달을 넘겨야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오늘 개막한다. 남북이 화합하고 세계인의 축제가 되는 평화 올림픽과 함께 판정 시비가 없는 공정한 대회로 역사에 기록되었으면 한다.

/유제관 편집1부장·부국장 jk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