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의 모험’, ‘걸리버 여행기’, ‘로빈슨 크루소’, ‘성냥팔이 소녀’, ‘80일간의 세계일주’, ‘플랜더스의 개’, ‘엄마 찾아 삼만리’ 등….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읽었을 동화들이다. 당시 동화책은 학급 문고가 대부분이었다. 표지가 헤질 대로 헤진 책들은 ‘계몽동화’라는 이름으로 비치돼 있었다.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나 출판 수준을 고려하면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꼭 ‘하기 싫은’ 과제가 주어졌었다. 독후감 쓰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근대화’, ‘조국 산업의 기수’, ‘멸공통일’ 등의 구호가 난무하던 시절의 교육은 대부분 주입식이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와 훈시, 그리고 교훈이 강조되는 동화책 읽기 등은 지금의 기성세대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국민학교’ 때 읽은 동화 가운데 ‘로빈슨 크루소’라는 책이 있다. 영국 작가 대니얼 디포가 쓴,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무인도 표류기를 형상화한 동화다. 극한의 환경에서 생존한 인간의 모험담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러나 과연 감명과 교훈 코드로 ‘로빈슨 크루소’를 해석해야 할까. 40∼50년 전 동화책 읽기 방식으로는 그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예전과 동일한 방식으로 동화를 본다는 것은 흐름과 맞지 않다.

동화에 ‘경제’를 결부시켜 새롭게 해석한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일간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최우성 씨가 펴낸 ‘동화경제사’는 동화를 통해 당대 현실을 들여다보고 시대에 따른 경제의 흐름을 좇는다. ‘돈과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책은 돈과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의 모습을 동화를 통해 들여다본다.

책에 수록된 15편의 이야기는 저자가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리고 부모가 됐을 때 아이와 함께 읽었던 시각과는 다른 차원의 읽기의 산물이다. 구체적으로는 ‘한겨레’ 토요판에 ‘최우성의 동화경제사’라는 제목으로 실린 연재물에서 비롯됐다.

‘다르게 읽기’는 아름답게만 치장된 동화 이면에 감춰진 다른 면을 들춰낸다. 예를 들면 이렇다. 앞서 언급한 ‘로빈슨 크루소’에 대해 저자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대영제국의 진정한 상징이자 영국 식민주의의 전형”이라는 평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로빈슨 크루소’는 탐험과 팽창, 정복과 지배로 얼룩진 유럽 자본주의의 탄생사를 정확하게 그려낸 교과서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에 대한 ‘다르게 읽기’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화의 대강 줄거리는 이렇다.

제비 한 마리가 동상 위에서 쉬다가 행복한 왕자의 눈물을 본다. 동상은 제비에게 자신을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자 제비는 칼자루의 루비와 눈에 박힌 사파이어를 가난한 이들에게 가져다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저자는 세상은 왜 변하지 않고 불행한가라고 반문한다. 산업혁명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난과 질병, 빈부 격차는 자선활동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논리다.

“물질문명은 나날이 발전해 갔으나, 정작 불평등은 확대되고 사람들의 삶은 더욱 비참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걸리버 여행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기존의 그것과 다르다. 걸리버가 여행 중 만난 브로브딩낙의 왕은 어떻게 영국 정부가 조세수입보다 많은 지출을 할 수 있었는지 묻는다. 그것은 현대사회 국가 채무의 본질을 꿰뚫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밖에 은화 한 닢이 없어 원하던 그림을 보지 못한 ‘플랜더스의 개’의 넬로의 이야기, 나치의 전사로 다시 태어난 꿀벌 마야의 이야기를 담은 ‘꿀벌 마야의 모험’도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인물과사상사·1만5000원〉

/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