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2008년 마지못해 한국에 대한 대외군사판매(FMS, Foreign Military Sale) 지위를 격상했다. FMS는 미국 정부가 무기 등 군사 장비를 외국에 수출할 때 적용하는 제도를 뜻하는 용어로, 그 지위 격상은 한국이 미국의 ‘봉’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의미를 갖는다.

수십 년 동안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할 때 연구 개발비, 무기 유지 관리 비용 등 9.8%에 달하는 부대비용을 부담했다. 미국은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 소속 국가와 일본·호주·뉴질랜드에 대해서는 당연히 면제해 주고 있는 비용을 한국에만 물려 왔던 것이다.

FMS 지위 격상을 이끌어 낸 이는 문창수 예비역 대령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역은 따로 있다. 광주 출신인 조헌주 전 중령(육사 39기·전남대 연구교수)이다. 지난 2003년 국방부 조달본부 외자 무기 구매 담당이었던 그는 백두·금강 사업 등 굵직한 국방 사업에서 한국이 ‘바가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그는 ‘미국의 비위를 건드리면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미국 군사 관계자들에게 시정을 촉구했다. 예편하기 전까지도 이 문제에 매달렸던 그는 동기인 문 대령에게 사안을 인계하고 군을 떠났다. 문제 제기 당시 국정원과 기무사로부터 유·무형의 외압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는 모두가 이 문제를 묵과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용기를 낸 대한민국 군 간부였다.

세상은 모두가 침묵하는 일에 분노하는 소수에 의해 변한다. 검찰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해 지금 한국판 ‘미 투’(ME TOO, 나도 당했다) 사건으로 확산하고 있는, 광주 출신 서지현 검사도 그런 사람으로 기록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추행 당사자와 함께 현장에 있었던 검찰 간부를 비롯해 감찰 부서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쉬쉬했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침묵이 사건을 은폐한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이 새삼 절절하다. “우리가 중대한 일에 침묵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종말을 고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다.”

/윤영기 사회부장 penfo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