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베이컨, 미카엘 세르베투스, 프란시스코 수아레스, 오컴의 윌리암, 갈릴레오 갈릴레이, 데카르트, 스피노자….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중세시대 활동했던 철학자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대에 ‘이단’으로 몰렸던 인물들이다. 한마디로 ‘신성한 모독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교황과 교회 권력이 정한 이외의 길을 모색했다는 이유로 가혹한 삶을 살아야 했다.

조선 후기 영남의 유학자 유건휴는 ‘이학집변(異學集辨)’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양명학을 비롯해 불교, 도교, 그리스도교를 포함하는 서학까지 ‘이학(異學)’으로 규정했다. 그는 후손들이 혹여 잘못된 학문의 길로 들어설까봐 염려했던 것 같다. 노자, 장자, 묵자, 순자, 도가 등 성리학의 주변부에 있던 학문에 ‘이단’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였다.

당시 적잖은 조선의 선비들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다. 정통은 역시나 공자와 맹자, 주희 혹은 주자였을 터였다. 이들을 거쳐 이황, 이이에 이르는 길이 바른 학문의 길로 치부되었을 터다.

짐작컨대 성리학의 길 이외의 학문을 추구했던 학자들은 모두 ‘이학’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단아의 삶은 그 자체로 외롭고 가혹하다. “‘우리와 다르다’는 말은 그저 ‘다르다’는 뜻이 아니었다. 영구불변의 진리를 거슬러 그 진리의 외부에 선 반역자 또는 역사의 방해물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많은 이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을까?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말이다. “인간은 이성을 지닌다. 인간은 자유롭고 존엄하다.”,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이단에서 정통으로, 반역자에서 선구자로 시대의 편견을 넘어선 철학자들의 연대기를 다룬 책이 나왔다. 중세철학자인 유대칠 연구가가 펴낸 ‘신성한 모독자’는 ‘중세’라는 사상의 용광로에서 오늘의 ‘상식’이 탄생하기까지를 들여다본다.

책이 다루는 대상은 중세 철학에만 한정돼 있지는 않다. 저자는 근세 철학자까지를 아우르며 ‘거룩한 이단자’들의 역사를 조명한다.

사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은 오늘날에는 확고부동한 과학의 진리지만 당시만 해도 이단으로 폄훼됐다. 종교개혁을 주창했던 루터와 칼뱅도 ‘성서’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코페르니쿠스를 사악한 이학자로 취급했다.

중세시대 이단은 오늘날 생각하는 ‘사이비’와 같은 종교적 의미와는 달랐다. 언급한대로 당시 이단이란 그리스도교 외부에 있는 ‘다른 길’이자 ‘잘못된 길’을 함의했다. “그저 다르다는 말”을 넘어 “도덕적 판단과 정죄로 낙인찍는 것”으로 비화됐다. 이단으로 낙인찍힌 이들의 책은 금서로 규정되거나 불태워졌고, 그 자신은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저자는 “로저 베이컨은 경험을 중시하고 관찰과 실험에 근거하여 빛과 무지개의 원리를 밝혀냈다가 ‘신의 신비’에 대한 인간 이성의 침범이라며 이단 선고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근대 정치철학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오컴 윌리암도 이단아로 규정돼 책이 불살라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역설했던 프란시스코 수아레스도 이단의 규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수아레스는 ‘국제법의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으며 가톨릭교회 학자나 개신교 학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 시대의 모습은 어떨까? 옴베르트 에코는 현대사회가 합리성으로 무장해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척 하지만 실은 ‘편견’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지금은 ‘새로운 중세’의 시대”라고 단언한다. 그리하여 책은 단지 “과거에 이러한 이단자들이 살았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당연하다 생각하는 지배적인 사고방식과 시대의 편견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추수밭·1만6000원〉

/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

* 소설가인 박성천 기자는 전남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남대에 출강중이며 소설집 ‘메스를 드는 시간’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