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도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말(言)에 관한 속담도 무수히 많다. ‘우리말 갈래 사전’(박용수 엮음)에서 그중 몇 개를 예로 들어 보자.

“말 단 집 장이 쓰다.” 말 많은 집은 장 맛도 쓰다, 즉 집안에 잔말이 많으면 살림이 잘 안 된다는 뜻이다. “말은 보태고 떡은 뗀다.” 말이란 전해 갈수록 더 보태어지고 음식은 전할 때부터 자꾸 줄어든다는 얘기다. “말이란 탁 해 다르고 툭 해 다르다”는 속담은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하는 데 따라서 다르게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때로 말은 총칼에 맞서는 ‘부드러운 무기’가 되기도 한다. 1937년 6월 말,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장 내 스페인관이 개관했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는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대작 ‘게르니카’가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그림은 그 해 4월 26일 나치 공군이 폭격기를 동원해 스페인 바스크 지방 소도시인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한 만행을 고발한 작품이다.

한 나치 장교가 ‘게르니카’ 앞에서 피카소에게 물었다. “이 그림을 그린 자가 당신인가?” “아니. 이 그림의 작자는 당신들이요.” 피카소는 그림뿐만 아니라 한마디 ‘말’로도 나치와 파시즘의 만행을 명쾌하게 지적했다.

최근 끝난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에서는 승부 외에 ‘말’도 화제가 됐다. 한국 테니스 역사상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4강 진출의 쾌거를 달성한 정현과 우승 트로피를 쥔 로저 페더러는 세련된 언행으로 호평을 받았다.

정현은 조코비치를 꺾은 후에도 패자를 자극하는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고, 인터뷰에서는 “조코비치가 어릴 적 우상이었다”면서 패자를 추켜세우는 겸손함을 보였다. 조코비치 역시 “(정현은) 의심할 여지 없이 10위권에 진입할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페더러는 우승 후 상대 마린 칠리치에게 “오늘 멋진 경기를 펼쳤다”고 했다. 또 팬들에게도 “당신들은 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존재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호주 오픈에서 선수들은 기량뿐만 아니라 언어의 품격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다. 연일 정치권에서 쏟아 내는 ‘막말’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