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는 내 친구’라는 어느 방송사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라디오는 아직도 여전히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다. 굳이 좋아한다 말하지 않아도 의지가 되는 가까운 벗인 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연들에 위로받고 행복해지곤 한다. 일하면서 또는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즐기는 이들, 그 중에서도 KBS를 자주 듣는 이들에게 어제(24일)는 좀 반가운 날이었다.

즐겨 듣는 KBS FM 라디오에서는 오랫동안 “방송사 사정으로 재방송을 보내 드린다”는 멘트가 흘러나왔었다. KBS 구성원들의 파업 때문이었다. 지난 23일 총파업은 종료됐고 어제는 정상 방송, 그러니까 생방송이 이뤄진 첫날이었다. 지난해 9월 4일 총파업을 시작했으니 무려 143일 만이다.

오랜만의 만남이니 진행자도 청취자도 조금은 감격스러웠다. 클래식 프로그램에는 2600여 건이 넘는 청취자들의 응원 메시지가 도착했다. “너무 사랑했던 방송을 다시 듣게 돼 울컥했다” “고생하셨다” “반갑다” 등 격려의 메시지가 많았다.

어느 아나운서가 읽어 준 시 한 편은 긴 여운이 남았다. “어둠은 눈이 없어 뭉치고 손발이 없어 뭉치고 그리고 입이 없어 뭉친다. 어둠은 둘이라는 숫자를 몰라 뭉치고 어둠은 말이 없어 뭉치고, 집이 없어 뭉친다. 과거가 없어 뭉치고, 미래가 없어 뭉치고, 더욱 현재가 없어 뭉친다. 그러나 그대여, 모든 것이 다 있는 그대와 나는, 뭉쳐서 독립한 저 어둠을 옷 벗고 만날 수 있는가. 존재가 없어 뭉치고, 뭉쳐서 빛이 된 저 한 송이 흑장미의 어둠을.”(오규원의 ‘어둠의 힘’)

또 다른 진행자는 “저간의 사정은 다 아실 거라며 앞으로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프로그램을 꾸려가겠다”는 담담한 멘트를 전했다. 시를 읽어 주었던 중견 아나운서는 “처음 마이크를 잡은 날을 떠올린다”며 그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했다. 어쩌면 긴 파업이었지만 ‘공정 방송’을 염원하며 기다려 준 청취자의 격려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열렬히 응원했던 그들이라도 언제든 냉정히 돌아설 수 있다. 신문 독자와 방송의 시청자·청취자의 신뢰를 잃는 건 순간이지만, 그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데는 훨씬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김미은 문화부장 me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