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중학생 아들에게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고 독서카드를 쓰도록 했다. 대학시절에는 필화(筆禍)를 겪으며 요즘으로 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사회적·경제적으로 ‘바닥’을 맛봤다. 그가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겪었던 쓰린 경험은 훗날 기자로, 작가로, 대통령 연설문을 쓰는 비서관으로 활동할 때 ‘꿈의 자원’으로 쓰였다. 고도원(66)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은 17년째 매일 아침마다 짧은 글귀를 담은 ‘마음의 비타민’ 같은 편지를 띄운다. 또한 명상센터인 ‘깊은 산속 옹달샘’(이하 옹달샘)을 운영해 상처입고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희망의 글’ 아침편지 독자 372만명=2001년 8월 1일, 그는 ‘더도 덜도 말고 사람들에게 마음의 비타민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시작했다. 첫 ‘아침편지’는 중국 문필가인 루쉰의 ‘고향’이라는 책에서 뽑은 ‘희망’이란 글이었다. 17년이 지난 현재 이메일 또는 홈페이지(www.godowon.com)와 앱을 통해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아침지기’(아침편지 가족)들만 372만여 명이다.

아침편지 문화재단과 명상치유센터 ‘옹달샘’은 충북 충주시 노은면 매방채산과 자주봉산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기자가 ‘옹달샘’을 찾았을 때 고 이사장은 직원들과 한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아침편지 원고를 쓰고 있었다. 인터뷰에 앞서 ‘나눔의 집’에서 점심식사를 먼저 했다. “뎅∼!” 식사 도중 종이 울리자 식당내 모든 사람들이 ‘그대로 멈춰라’ 놀이를 하듯 일제히 동작을 멈춘다.

“우리가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는 일이 많잖아요. 잠깐 멈추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딱 멈춰보면 향기도 느끼고, 매운맛·쓴맛도 느끼고, 경우에 따라서는 국물이 오기까지 얼마나 여러 사람이 수고를 했나 생각할 수 있고….”

책과 꿈, 명상. 고 이사장의 인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어린 시절 ‘책’을 통해 잉태된 ‘꿈’들은 한겨울 같은 20대 역경의 시간을 지나 50대에 ‘아침편지’와 ‘명상’으로 싹을 틔우게 된다.

전주 북중과 전주고를 졸업한 그는 목사와 학문, 두 가지 모두 뜻을 두고 1971년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신문인 ‘연세춘추’ 편집장을 맡고 있을 때 ‘십계명’이라는 칼럼난에 쓴 글로 인해 필화(筆禍)를 겪고 제적됐다. 강제 징집돼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온 그는 꿈꿨던 목사가 될 수 없었다. 회사 취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포장마차를 열었고, 문방구를 하려다 사기를 당해 투자비를 몽땅 날리기도 했다.

대학 졸업장이 없는 그를 월간 ‘뿌리깊은 나무’ 발행인인 한창기 사장이 기자로 채용했다. 잡지가 신군부에 의해 폐간된 후에는 중앙일보로 스카우트돼 의욕적으로 기사를 썼다. 정치부 기자 시절, 평민당을 출입하며 김대중 당시 총재와 ‘책’을 매개로 인연을 맺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인생의 책을 얘기하시는데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에요. 그 책은 중 2 때 회초리 맞아가며 독서카드 쓰는 법을 배웠던 책이었어요. 저와 그 책을 놓고 대화하다가 ‘젊은 친구가 속속들이 읽었구나’ 놀라셨다고 그래요.”

◇아버지가 밑줄 그어놓은 문장에 감동=5년간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는 비서관 역할을 수행하며 누적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몸이 무너졌다. 일종의 뇌졸중이었다. 이때 우연하게 아버지가 물려준 루쉰의 책을 들춰보다가 밑줄 그어 놓은 문장을 보게 됐다. ‘아침편지’는 그렇게 시작됐다. 중학생때부터 작성한 독서카드를 이용해 매일 ‘아침편지’를 띄우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망가졌던 그의 몸과 마음도 시나브로 치유됐다.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는 330개의 강이 흘러들지만 항상 맑음을 유지합니다. 모래알보다 더 미세한 새우모양의 ‘에피슈라’가 물을 정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영혼의 우물’이 항상 맑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화시키는 것이 바로 ‘명상’이에요.”

고 이사장은 ‘아침편지’를 운영하면서 명상을 알게 됐다. 청와대에서 나온 후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이 세운 프랑스 명상수행 공동체 ‘프럼 빌리지’(자두마을)와 인도 ‘오로빌 마을’과 ‘오쇼 명상센터’를 찾아다니면서 ‘한국에도 이런 공간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주위의 만류에도 집을 팔아 종자돈을 마련했다. ‘아침지기’들도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냈다. 현재 자리에 7만여 평의 부지를 마련해 2010년 10월에 ‘깊은 산속 옹달샘’을 개원했다. 현재는 연간 10만 명이 찾을 정도로 세계적인 명상센터의 범주에 들어간다.

◇“실패 경험은 나중 성공의 씨앗”=‘옹달샘’ 프로그램은 ▲명상프로그램 ▲기업·단체 힐링연수 프로그램(휴잠·休+잠깐 멈춤)▲교사 직무연수 ▲깊은 산속 링컨학교 등 다채롭다.

고 이사장은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암싸이’(암과 싸워 이긴 사람들)센터와 청소년 꿈너머꿈 센터, 아버지 센터, 디지털 빌리지(컬쳐&아티스트 센터) 등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앞서 고개 숙인 아버지를 대상으로 하는 ‘아버지 센터’는 서울 서초구에 개설했다. 또한 ‘아침편지’를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전 세계에 배달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꿈을 이룬 다음의 ‘꿈 너머 꿈’이다. 삶도, 명상도 궁극의 목표는 ‘함께 잘 사는 것’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의 시선은 실패자와 실업자, 낙오자들에게 향하고 있다. 그 역시 겪었지만 ‘실패의 경험은 나중에 정말 위대한 성공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아침편지’ 마지막 인사말은 한결같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충북 충주=송기동기자 song@

/사진=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