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계엄사령부가 작성한 ‘계엄 상황 일지’ 가운데 5·18 민주화운동의 핵심을 담은 기록이 통째로 누락된 사실이 드러났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공수부대 ‘전투 상보’와 전남도경 ‘상황 일지’에 이어 5·18 자료를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왜곡하고 은폐한 증거가 추가로 발견된 것이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는 최근 5·18 정책자료집에 실린 ‘5·18 진상 규명의 역사적 과정에 대한 고찰’에서 지난 1988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에 제출된 계엄 작전 자료를 고찰했다.

광주 진압 상황이 담긴 계엄군의 상황 일지를 분석한 결과 지휘관의 결재가 누락됐거나 일련번호가 뒤섞여 있는가 하면 특정 날짜의 기록은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80년 5월17일부터 20일까지와 23일은 상황장교, 상황실장, 기획실장, 참모부장, 참모장으로 이어지는 결재 라인의 서명이 빠져 있었다. 문서 작성 매뉴얼과 다르게 상황 일지의 일련번호가 뒤섞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계엄군의 과잉 진압과 집단 발포 등 5·18 진상 규명에 핵심 쟁점이 되는 5월 18일부터 21일과 23일, 25일 등 6일간은 일련번호가 열아홉 군데나 누락돼 있었다.

계엄 상황 일지를 왜곡한 주체로는 전두환 정권이 만든 ‘80위원회’와 노태우 정부가 1988년 2월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꾸린 ‘511분석반’ 등이 지목된다. 1988년 국회 청문회 당시에도 부실 자료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지만 면밀한 검증 없이 고의가 아니라는 군의 설명을 그대로 수용한 바 있다.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도 이처럼 오염된 자료 때문에 ‘가짜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5·18 핵심 의혹에 대한 진실은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정확히 밝혀내야만 한다. 누가 기록을 삭제하고 은폐하고 왜곡했는지 끝까지 추적해서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