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를 문 체 게바라와 말간 얼굴의 윤상원이 택시에 동승했다. 뒤로 보이는 건 전남도청 건물. 분수대 주변으로 롤러 브레이드를 타는 아이와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남녀의 모습이 보인다. 무고한 사람들의 무죄를 밝혀온 박준영 변호사는 드레퓌스를 적극 변호했던 소설가 에밀 졸라와 함께 택시에 탔다.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리는 있는 서기문(전남대 예술대 교수) 작가의 ‘미술과 시대정신’(19일까지)전은 관람객들을 역사 속으로 데려간다. 시공간을 초월해 그가 불러낸 동서양 인물들은 ‘짝’을 이뤄 이야기를 건넨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정의와 민주화의 불씨를 살려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정신을 지켜온 인물들이다.

맑고 청아한 극사실주의 수채화로 잘 알려진 서 작가는 2007년 ‘광주정신전’을 통해 5월 인물을 호출하며 사람에 관심을 갖게 됐다.

“광주 문제를 언젠가는 짚고 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채감이라고 할까요. 작가는 시대와 삶의 현장을 외면해서는 안돼죠.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서도 작가는 비판하고 또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은 무형의 것이고, 그걸 가시화시키는 방법으로 ‘인물’을 택했다. 인물의 표정과 눈빛에 영혼을 담는 작업이다. 작가는 부채감을 다 덜 수는 없었지만 광주 정신 전시가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새로운 작업의 출발점이 된 것만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2008년 달리와 프로이드를 그리며 처음 시작한 ‘동행’ 시리즈에는 ‘택시’가 등장한다. 한 곳에 존재하기 어려운 인물들을 만나게 하고, 그들이 역동적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담는 장치다.

2017년 근작들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는 김구와 쑨원, 닥터 노먼 버쑨과 의사 강용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델라가 함께 택시를 탔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는 택시에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함께다. 원색의 양복을 차려 입은 전태일 열사는 일군의 서양인들과 어디론가 떠나려한다. ‘노동자의 날’을 만든 미국 헤지마켓(1886) 사건의 희생자들이다.

또 다른 시리즈인 ‘대화’에서는 손석희 앵커와 미국 탐사보도의 대가로 영화 ‘인사이더’의 실제 주인공인 로웰 버그만, 석학 촘스키와 이영희 선생의 모습도 보인다. 요즘 화제를 모으고 있는 김어준과 동행한 이는 연암 박지원이다. 워낙 전방위로 활동하는 인물이라 ‘누구와 함께여도’ 어색하지 않은 그를 연암과 한 화폭에 담은 건 거리낌 없는 자유와 삐딱한 사유로 허위의식과 위선을 타파했다는 생각에서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작품은 팔레스타인에서 음악 공연 등을 열었던 에드워드 사이드와 바렌보임의 ‘동행’이다. 무엇보다 서 작가의 특장인 수채화로 그려낸 바렌보임의 지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세월호를 소재로 평범한 인물을 그린 ‘좋은 이웃’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서 작가는 수채화, 유화, 아크릴 등으로 다양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인물에 주목하다 자칫 놓치기 쉬운 게 이들 작품의 배경이다. 인물들 이야기를 훨씬 풍성하게 하는 장치다.

“함께 할 수 없는 인물을 상상력을 더해 한 자리에 모으는 작업은 상대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관람객들의 공감을 끌어낸 다음,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요. 또 왜 저 사람이 한 공간에 있을까 질문을 하는 것도 기대합니다. 시대 정신은 곧 생각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숨을 쉬고 살아가는 공간에서 도덕적 위용을 가지고 올바른 삶을 실천해왔던 이들을 떠올리며 시대를 돌아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한 전시입니다.”

그에게 ‘동행’하고 싶은 이를 물었다. 저항 정신을 가졌고, 탁월한 해석가였던 미술평론가이자 소설가 존 버거가 우선 떠오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인물은 신영복이다. 그를 누구와 ‘동행’ 시킬지 고민하며 작업을 이어갈 생각이다. 전시장에선 자연스레 역사 공부도 된다. 화폭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싶게 만드는 전시다. 매일 도슨트 설명회가 열린다. 문의 062-360-1271.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