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우리 사회는 IMF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환란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급격한 정책변화와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문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외환위기가 한국에 끼친 영향(복수선택)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비정규직 문제 증가’(88.8%)를 꼽았다. 또한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에 끼친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양극화 심화’를 선택한 응답자(31.8%)가 가장 많았다.

비정규직 문제와 양극화는 결국 실업문제와 연관돼 있다. 더욱이 최근 청년실업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을 만큼 악화일로다. 1997년 외환위기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곳곳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1929년 10월 미국발 경제 대공황이 시작되자, 대미국 수출에 크게 의존하던 독일 경제는 치명타를 입었고 600만 명이나 되는 실업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경제가 파탄나면서 독일인들은 그 해결사로 “내가 집권하면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독일 경제를 살려내겠다!”고 외친 히틀러를 선택했다.”

일자리는 세상을 바꿔버릴 만큼 휘발성이 강한 문제다. 지배층의 무능과 부패, 불황 등으로 기인한 실업은 자칫 사회 혼란을 넘어 지배층의 교체, 나라의 멸망에까지 이르게 한다. 일자리는 결국 삶의 모든 것이며,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동양과 서양의 역사를 바꾼 14가지 실업문제를 다룬 책이 출간됐다. 과연 실업을 방치한 사회, 빈곤에 무책임한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원균과 이순신’ 등 역사교양서을 꾸준히 펴내고 있는 도현신 작가의 ‘실업이 바꾼 세계사’는 대량해고, 불황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다각도로 조명한다. 책에는 90컷의 이미지와 지도 등이 수록돼 있어 이해를 돕는다.

6세기 중국에서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양나라는 지배층의 이기심과 무능으로 멸망한다. 당시 양무제 소연은 측근과 지배층의 백성에 대한 수탈을 방치했고 그로 인해 난이 일어났다. 17세기 명나라는 청나라와의 전쟁에 대한 군비지출을 역졸들에게 부담하는 바람에 몰락한다. 해고된 역졸 출신 이자성이 난을 일으켰던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실업은 특정한 지역을 넘어 세계 곳곳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29년 경제대공황은 결국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재앙을 초래했다. 1992년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사이에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은 멕시코 경제난을 가중시켰다. 이후 멕시코에는 거대 마약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정부와의 충돌이 이어졌다. 저자는 “멕시코에 마약 조직이 창궐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마약 밀매가 가난에 찌든 멕시코인들의 생계수단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역사 속 실업도 소개한다. 고려 삼별초의 난을 예로 들면서 “실업자(삼별초 혁파)로 전락한 것도 모자라 외국에 총알받이로 끌려갈(삼별초 명단이 몽골로 넘어감) 위기에 처하자, 분개하여 무기를 들고 자신들의 생계를 외면한 정부 권력에 맞서”게 됐다는 것이다.

실업은 더 이상 개인 문제로 한정해서는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전체 사회 문제라는 인식의 토대 위에 양질의 일자리 창출, 불평등한 부의 분배 등을 개선해야 한다. 1997년 IMF 경제위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그때 만들어진 사회체제에 얽매여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서해문집·1만3900원〉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