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제봉산 곳곳에는 곱게 써 붙인 풀과 나무의 이름표가 달려 있다. 또한 등산길 나뭇가지에는 예쁘게 코팅된 시들이 매달려 있다.

고향 산을 찾는 이들을 위해 등산길에 시를 코팅해 달아 놓는 이가 있다. 주인공은 장성 출신 조선희 시인.

조 씨가 시를 좋아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된 데는 남다른 인생 이력 때문이다. 파독 간호사 출신인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36년 전 함부르크의 도시에 있는 양로원에서 근무를 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 스물두살이었다.

“1974년 어느 봄날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2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머나먼 서독으로 떠났지요. 생전 처음 타보는 비행기, 낯선 타국에 간호사로 파견된다는 사실 등 모든 것이 제게는 막막했습니다.”

조 시인은 당시는 특별한 이들 말고는 대부분 가난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7남매 중 장녀였던 그녀의 집안도 마찬가지였다. 어렵사리 공부를 해 장성농고를 졸업하고, 이후 전남간호보조학원을 나와 간호사가 된 이유다.

조 씨는 “독학으로 독일어를 공부해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며 “배속된 양로원에서 노인들 씻기는 것부터 일상 수발을 하다시피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녀는 “야근 중에 환자가 죽으면 시신의 사후처리까지 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국의 집에는 전화는 물론 TV도 없던 때였다. 오직 편지로만 1개월 여의 시차를 두고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때의 환경은 젊은 우리들이 모든 것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근무를 했고 토요일과 일요일도 아르바이트를 했죠.”

가난과 외로움을 잊기 위한 방편이었다. 조 시인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병원에서 근무하는 한국 간호사들이 많이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5년을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을 하고 귀국했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려준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됐고, 지금까지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다.

조 시인은 현재 매달 요양원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한다. 어르신들에게 삼겹살을 구워 대접하고 겨울에는 김치를 담가준다. 남편을 따라 JC활동을 하면서 시작된 봉사가 이제는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갈 정도다.

전남문인협회와 전남시인협회 이사이기도 한 조 시인은 최근 세 번째 시조집 ‘푸른 바람소리’(한림)를 펴냈다. 젊은 시절 이역만리 타국에서 외롭고 힘든 시간을 틈틈이 글을 쓰며 버틴 것이 오늘에까지 습관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고교시절에는 단편소설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어요. 이후 동암 김병효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본격적으로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조 씨는 1998년 문학춘추에 시로, 2002년 시조문학으로 등단을 했다. 이후 작품세계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 야생화와 방언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같이 산을 오르다보니 지천에 피어 있는 야생화를 알고 싶었다”며 “그러다 보니 나무와 풀에까지 관심이 확장돼 이름표를 붙여주게 됐다”고 한다.

앞으로도 배우고 봉사하면서 인생 만년을 보내고 싶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살면서 힘든 때가 왜 없었겠어요? 참고 살다보니 모든 것이 다 해결되더라구요.”

/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