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앞두고 지긋지긋한 책에서 벗어나고자 책도 다 버려버렸는데….”

경북 포항 지진 영향으로 사상 최초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되자 학생과 학부모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수능 일을 목표로 시험 준비를 해왔던 학생들은 앞으로 스케줄과 체력·정신력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워했지만 자연재해로 인한 수능 연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도 많았다.

일부 학생들은 시험 준비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광주시 광산구 모 고교 고3 수험생 박모(19)군은 “떨려서 잠도 못 잤는데 갑자기 수능이 연기돼 어이가 없다”면서도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주일 더 남았으니까 안도감이 든다”고 말했다.

집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다가 연기 소식을 들었다는 김모(19)양은 “재수를 하는 입장에서 많이 긴장했던 시험인데 뉴스를 보고 앞으로 대입 전형일정이 어떻게 될지 혼란스러웠다”며 “수능 이후에 논술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향후 일정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게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수험생은 수능 연기가 당혹스러운 듯 과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북구 운암동에 사는 고3 학부모 김모(50)씨는 “우리 아들은 책도 다 버렸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지었다.

재수생 자녀를 둔 김모(59)씨는 “지금 아들이 도서관에 있는데 평소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하고 공부해서인지 연결이 안 된다”며 “연기된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고3 딸을 둔 아버지 김모(48)씨는 “애 엄마와 ’애들 힘든데 어떡하냐’며 착잡해 하고 있었는데 아이와 통화해보니까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면서 “내일 수능에 엄청난 중압감 느끼고 있었는데 당장의 긴장감에서 해방되고 준비할 시간을 더 벌어서 좋다고 한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수능연기에 학원가에서도 혼란스러운 모습이 감지됐다.

광주시 동구 모 학원에서 수험생활을 해온 박모(여·20)씨는 “이날만을 위해서 1년간 준비했고 막바지 컨디션 관리하면서 수액 주사도 맞았는데 너무 당황스럽다”며 “앞으로 1주일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한 학원 관계자는 “학원을 여는지, 자습실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지 등을 묻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며 “일단 정상적으로 나와서 공부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종행기자 gole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