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자사전 ‘설문해자’에는 왕(王)은 “하늘과 땅과 인간을 하나로 꿴 존재”로 풀이돼 있다. 물론 이는 왕이라는 존재가 신비화된 이후에 내려진 해석으로 보인다.

왕은 도끼의 모양을 본떠 유래했다는 견해도 있다. 왕(王) 자를 분리해놓고 보면 날과 몸통, 자루를 끼우는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끼에 비유한다는 것은 도끼가 바로 생사여탈을 쥔 상징을 지닌다는 의미다. 고대사회 지배자의 무덤에서 도끼가 출토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왕의 명령을 받고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출정할 때 왕에게 도끼를 하사받고 돌아오면 이를 반납하는 것 역시 도끼가 왕을 상징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왕은 다름아닌 권력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부자나 형제간에도 권력 싸움이 존재했다. 지정학적으로 반도의 형국인 우리나라는 외부 세력들과도 끊임없이 힘을 겨뤄야 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왕’은 무엇이며 어떤 존재인가. 민주주의 관점으로 재평가한 역사 속 왕들에 관한 책이 발간됐다. 역사 강의 팟캐스트 ‘타박타박 역사기행’을 진행하고 있는 강응천 씨가 ‘역사의 키워드 왕을 말하다’를 펴냈다.

저자는 단군왕검에서 군주의 탄생과 의미를 따져 보는 것으로 시작해 백제 무령왕 편에서는 왕과 귀족의 관계를 살펴본다.

선조 편에서는 콤플렉스가 어떻게 왕권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헤쳐본다. 중종 편에서는 왕과 신하의 관계를 가늠해보고, 청나라 침입으로 백성을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를 통해서는 왕권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방식과 관점으로 군주를 호출하고 있을까. 사극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 속 왕은 민족주의적 관점에 치우쳐져 있는 게 사실이다. 저자는 한국사 마지막 왕들이 외세에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왕을 민중의 지배자보다 민족의 지도자로 본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왕조는 대체로 민중 혁명으로 전복됐다. 그러나 우리의 왕은 일제에 의해 백성이 보는 앞에서 숨을 거뒀다. 한국인들에게 고종과 순종은 지배자이면서 피해자인 이중의 의미로 각인돼 있다. 과연 이러한 시각은 21세기인 오늘에도 유효한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저자는 한 나라의 왕인 동시에 다른 제국의 신하에 지나지 않았던 ‘충(忠)’ 자 돌림 왕들의 역사, 세종대왕이 펼친 성군의 역사도 소개한다. 나아가 권력 사유화의 아이콘 연산군, 북벌의 정치를 주창했던 효종, 예송의 군주 현종, 탕평의 군주 영조 이야기도 특유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역사를 풍부하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왕들을 평가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도 그의 리더십은 세습군주제의 산물이므로 민주적 관점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종종 그러한 유혹에 빠져 왕과 같은 ‘절대적 지도자’를 바라는 일부의 왜곡된 민심을 조장한다. 따라서 우리 역사에 등장한 왕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한겨레출판·1만4000원〉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