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일부 국가는 낙태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임신갈등상담소의 소견서가 있으면 12주 미만 태아 낙태도 가능하다. 영국 낙태법은 의사 2인이 인정하면 임신 22주까지 낙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태아도 중요하지만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는 모자보건법에서 예외 조항을 두고 있지만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형법 269조 1항에는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자기 낙태죄’규정을 두고 있다. 270조 1항에도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동의 낙태죄’ 규정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동의 낙태죄’ 규정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한 조산사가 ‘임부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데 따른 판단이었다. 합헌 결정이 내려진 과정은 의외로 허망했다. 찬성·반대 의견이 4대4로 갈림으로써 위헌 결정을 위한 정족수(6명)에 못 미쳐 결국 합헌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찬성 쪽 의견의 골자는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태아는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대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국가는 생명을 보호하는 입법적 조치를 취함에 있어 인간 생명의 발달 단계에 따라 그 보호 정도나 보호 수단을 달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낙태를 전면 금지하기보다 태아의 발달 정도를 봐서 일정 부분 허용하자는 절충론인 셈이다.

5년 전 합헌 결정이 내려진 낙태죄가 최근 헌재의 심판대에 올랐다. 청와대에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도 20만 명을 넘어섰다. 재판관들이 원치 않는 임신에 고통받는 여성들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태아의 생명권 보호에 중점을 둔 판단을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윤영기 사회부장 penfo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