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글자를 새기는 것은 마음을 새기는 일이다. 칼은 힘이 좋다. 칼 위에 마음을 얹으면 돌 속에 내 마음이 아로새겨진다.”

학문학자 정민 교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인문학자다. 활발한 저술과 연구활동으로 한문학과 일반 대중 사이의 벽을 허무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이번에 정민 교수가 짧지만 큰 울림을 주는 글귀를 모은 ‘돌 위에 새긴 생각’을 펴냈다. 본래 이 책은 명나라 말엽 장호가 옛 경전에서 좋은 글귀를 간추려 전각가들에게 새기게 해 엮은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로, 17년 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2000년 초판을 펴냈던 정민 교수는 지난 2012년 방문학자 신분으로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 1년간 머물렀다. 그곳 희귀본 서가에서 ‘학산당인보’의 원본과 마주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책을 열람실로 빌려와 전권을 한 장 한 장 정성스레 촬영했고, 이후 원본에 새로 더해 이번에 개정판을 펴냈다.

알려진 대로 전각은 서예와 조각, 회화와 구성을 포괄하는 종합예술이다. 돌 하나하나의 구성도 그렇지만 행간에 담긴 옛사람들의 숨결과 의미는 여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짧은 글귀에는 선인들의 삶의 지혜와 자연의 이치, 욕망에 제약되지 않는 자유가 담겨 있다.

‘학산당인보’에 서문을 실은 박제가는 책에 실린 전각을 일컬어 “글은 짧지만 의미는 길고, 널리 채집했어도 담긴 뜻은 엄정하다”고 평했다. 또한 “시원스럽기는 멍청한 자를 지혜롭게 할 수가 있고, 우뚝함은 여린 자를 굳세게 할 수가 있다. 소인은 원망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충분하고, 군자가 바른 기운을 붙들어 세우기에 넉넉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잠언집에는 짧지만 마음을 맑게 해주는 옛글들이 다수 수록돼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정갈한 글들이다.

“好學者雖死若存(호학자수사약존)/ 不學者雖存 行尸走肉耳(불학자수존 행시주육이)”는 배움의 중요성을 역설한 글귀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록 죽더라도 산 것과 같고, 배우지 않는 자는 비록 살아 있어도 걸어다니는 시체요. 달리는 고깃덩어리일 뿐이다”는 뜻이다.

인생은 모름지기 그 마지막을 보아야 한다는 “人生須觀結局(인생수관결국)”은 무슨 일이든 마지막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또한 분수에 맞는 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過分求福(과분구복)/ 不如安分遠禍(불여안분원화)”는 복을 구하기보다 덕을 쌓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처럼 책에는 간결한 아름다움과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담백한 글귀가 오롯이 담겨 있다. 현재의 자신을 대입해보면 분명 얻을 수 있는 해답이 있을 것이다.

정민 교수는 서문에서 한 시절 인연의 증거로 이 책을 펴낸다고 밝힌다. “돌 위에 새겨진 옛사람들의 생각을 따라 읽다가 어느새 나는 지금 여기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한 획 한 획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 간난(艱難)과 고민의 한 시절을 살았던 선인들의 열정과 애환이 담겨 있다. 막상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열림원·1만4000원〉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