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이건리 위원장의 하소연이다. 특조위는 전일빌딩 헬기 사격과 전투기 출격 대기 진상을 조사하고 발포 명령자까지 규명하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두 달 가까이 ‘가짜 문서’와 싸우고 있다. ‘80위원회’와 ‘511분석반’이라는 소위 ‘5·18 조작단’이 군과 경찰 관련 문서를 광범위하고 치밀하게 조작해 놓았기 때문이다.

1985년 전두환 정권은 12대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고 5·18에 대한 진상 규명 요구가 잇따르자 안기부 주도로 ‘80위원회’를 만들어 1980년 당시 군 지휘 체계와 작전 상황 등의 자료를 조작하고 왜곡했다. 또 1988년 노태우 정권에서는 보안사에 ‘511분석반’을 설치해 발포 명령자·대량 살상무기 사용·사망자 수까지 대대적인 은폐 공작을 펼쳤다.

이들은 계엄군의 문서 중 군에 불리한 내용은 원본을 바꾸고 출동 기록과 증언을 왜곡해 다시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11공수 특전여단 전투상보에는 5월 21일 오후 1시 도청 앞 집단 발포에 대한 기록이 송두리째 빠져 있고, 전남도경 상황일지에는 나주 남평지서 칼빈소총과 실탄 피탈 시간이 실제보다 4시간30분 앞당겨진 ‘오전 9시’로 기록되어 있다. 집단 발포가 시민들의 무장에 따른 자위권 차원이라는 신군부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쳐 쓴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무사가 5·18 핵심 자료를 가로·세로 70cm 크기의 나무 상자 8개에 넣어 지하 벙커에 보관하고 있다가 전두환·노태우 재판이 열리던 1996년 소각해 파기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특조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무사가 파기하고 ‘5·18 조작단’이 오염시킨 군·경 문서를 통한 5·18 진상 규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제 참여자들의 제보와 증언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특조위도 광주일보와 함께 제보자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5·18에 참여한 군인들의 나이가 60∼80대에 이르러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기엔 시간이 많지 않다. 국회에 계류 중인 5·18특별법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제관 편집1부 부국장 jk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