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인 조카가 하나 있다.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정부 공기업 입사 시험을 준비해 왔던 아이인데 최근 공기업 취업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 모임에서 “우리 친인척 중 누가 ‘빽’이 가장 좋으냐”고 물었다. 모두가 한순간 머쓱해 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른바 ‘빽’이 이슈가 됐다. ‘빽’은 영문 ‘백 그라운드’(Back Ground)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연줄’과 뒤에서 돌봐 주는 ‘배경’을 일컫는 말로 해석되고 있다. 한데 이번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인 강원랜드와 국내 대표적 금융기관인 우리은행의 청탁을 통한 채용 비리가 드러나면서 집안에 ‘빽’ 없는 청년 구직자들의 가슴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강원랜드는 2012년과 2013년에 들어간 신입 사원 518명 모두가 ‘빽’으로 채용됐다고 한다. 당시 지원자는 5286명으로, 경쟁률은 10대1을 넘었다. 청탁을 받은 응시자 숫자만 625명이나 됐다고 하니 이 중에서 ‘빽’ 순위에 밀려 떨어진 응시자도 상당수일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탈락자들은 한마디로 ‘빽’에 밀려 들러리만 선 셈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왜 청년 구직자들이 ‘헬조선’을 이야기하고,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는 ‘수저 계급론’이 대두됐는지 새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은 모든 취업 준비생의 꿈이다. 이 때문에 꽃다운 청춘을 다 바쳐 밤잠을 거르며 입사 시험에 매진한다. 그런데 공기업 채용 비리라니, 청년 구직자들의 가슴은 멍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강원랜드를 비롯한 공공기관 인사·채용 비리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고 검찰도 수사에 나선다니 다행스럽다. 공공기관은 물론, 지방자치단체가 관리 운영하는 지방 공기업과 지방 공공기관, 국가 위임 사무를 맡은 공직 유관 단체 등이 다 해당된다.

1년 전 촛불을 들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간 우리 국민은 공정한 사회, 공평한 사회를 원했다. 다시는 청년들 사이에 ‘헬조선’ ‘흙수저’ ‘금수저’ 같은 말이 나오지 않도록 새 정부에서 의지를 갖고 공기업 등의 채용 비리를 척결하길 기대해 본다.

/최권일 정치부 부장 c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