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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좌측담장] 솔직히 찜찜해

2017. 09.21. 00:00:00

어릴 때부터 거의 모든 스포츠 종목을 좋아했었다. 텔레비전으로 축구나 야구를 보며 열을 올리고 있으면 엄마는 말씀하셨다. 그거 이기면 떡이 나오느냐, 밥이 나오느냐? 물론 아무것도 나오는 건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안 보는 것보다 더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최근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그랬던 것 같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있었던 이란과의 홈경기는 심지어 직접 경기장에서 관전했는데, 그날 종일 회사에 있었던 여덟 시간보다 더한 답답함을 90분 내내 느껴야 했다. 답답하다고 내가 뛸 수도 없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
광주에서 살았으니 자연스레 축구보다는 야구에 가까워졌지만 광주에 일찍부터 프로 축구 팀이 있었다면, 분명히 그 팀의 팬이 되었을 것이다. 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종목이고,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야구보다 투박하지만 다이내믹하고 빠르며, 야구보다 스코어가 덜 나지만, 이변이 잦다. 최근 K리그에서 특유의 깔끔한 축구로 준수한 성적을 올렸던 광주FC가 올 시즌은 강등의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아직 남은 시즌은 길다. 아무쪼록 많은 팬이 경기장을 찾아 그들의 생존에 힘을 불어넣어 주시길.
광주FC와 달리 이 지역의 야구팀 기아 타이거즈는 올해 성적이 매우 빼어나다. 시즌 초부터 달려 나가더니 시즌이 끝나 가는 지금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홈 경기장 만원은 이미 신기록을 세웠고, 원정 또한 기아 타이거즈 경기라면 흥행이 보장된다. 역시 야구를 잘하고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 찜찜하다. 이 분분한 불안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위라고 마냥 기쁘지가 않다. 몇 점 차이가 나건 상대방에게 역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불펜 때문인가? 괴이한 운영과 작전으로 게임을 어렵게 끌고 가곤 하는 코칭 스텝 때문인가? 아님 그저 기분 탓인가?
다시 축구 이야기를 해도 좋겠다. 지난 몇 년간 K리그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축구 실력, 인프라, 중계, 관중. 이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스포츠 도박과 연계된 승부 조작이 리그의 몇몇 팀에서 적발이 되었고, 명문 팀의 스트라이커이자 국가대표를 지냈던 선수마저 연루됨이 드러났다. 의문의 자살 사건으로 앞날이 길었던 젊은 선수의 삶이 끝나기도 했다. 하부 리그 조직, 각 팀의 법인화, 로컬룰의 수정 등으로 비상을 준비하던 K리그에는 크나큰 악재였다. K리그의 위축은 결과적으로 국가대표 팀의 부진과도 연계된다. 상암동에서 보았던, 눈이 부패되려 하던 그 경기력도 K리그의 위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야구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스포츠 도박에 빠지고 조직폭력배와 연결되어, 한순간에 야구 인생을 망친 선수를 우리는 꽤나 알고 있다. 상대적으로 드러난 수치가 적을 뿐, 승부 조작에 있어 야구 또한 청정지대가 결코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심판 매수 의혹, 금지 약물 복용, 해외 원정 도박, 음주 운전, SNS 논란 등등. 도대체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던 프로야구는 어디로 갔는가. 많은 사람들은 팬들의 환호와 어린이의 사인 공세에 성실히 응하는 팬 서비스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사고나 치지 않기를 바랄 뿐. 팬들이 엄마는 아닌데, 이상하게도 부모의 마음이 되어 노심초사, 미치고 환장할 노릇.
기아 타이거즈는 지난 8월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KBO 심판에게 돈을 건넸음을 시인했다. 보기에 따라 심판의 협박에 못 이긴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구단이 심판에 금품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스포츠의 생명인 공정성을 심각하게 해하는 행위임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구단은 자진 신고 기간도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한 시즌이 마무리되려고 한다. 기아 타이거즈는 1위를 고수하고 있고, 이대로라면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대권을 노려봄직하다. 이 모든 게 자연스럽고 자랑스럽나? 글쎄 이기면 기분은 좋겠다만 감동은 이미 토막 나고 으깨졌다. 알 수 없던 찜찜함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니.
거의 모든 스포츠는 승부를 가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기고 지고에 따라서 많은 것이 바뀐다. 공정한 룰 안에서 타고난 재능과 끈질긴 노력으로 승자와 패자가 나뉨을 믿기에 우리는 그깟 공놀이에 환호하고 감동하며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일 테다. 그날, 목 놓아 응원가를 부르고 선수의 이름을 외치고 박수를 쳤던 그날 중에 어느 날, 심판의 장난으로 스트라이크 존이 바뀌었을 수 있다. 약물의 도움을 받은 야수가 홈런을 때렸을 수 있다. 사설 도박에 배팅 건 투수가 일부러 볼을 던졌을 수 있다. 이런 거지 같은 상상을 거듭하자니, 야구에 정이 뚝뚝 떨어지지만, 아직은 어쩐지 부모의 마음이 되어 이제 안 그러길 애써 바라는 것이다. 바보 같이. 엄마처럼.
그러나 우리는 진짜 부모가 아니고, 사실 용서가 잘 안 된다. 기억은 잠복되어 있다가 언제고 나타날 것이다. 이 찜찜함을 솔직히 말하지 않고서는, 야구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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