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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순 자택 5·18 사적지 지정을 반기며

2017. 09.12. 00:00:00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고(故) 홍남순 변호사의 자택이 5·18사적지( 제29호)로 지정·고시했다. 늦었지만 잘된 일이다.

‘시대의 의인’이자 1세대 민주인권변호사로 불리는 홍남순 변호사는 1960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위원회 전남부위원장, 1969년 3선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전남위원장, 1980년 5·18 수습대책위원, 1985년 5·18광주민중혁명기념사업 및 위령탑건립추진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한국 민주화운동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1983년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함석헌·문익환 등과 함께 5인 긴급선언을 발표하고, 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김대중 선생을 찾아가 용기를 북돋아주며 목숨을 건 변론을 펼쳤던 홍 변호사의 기개 또한 세인들 뇌리에서 잊힌 지 오래다. 고인의 10주기였던 지난해 광주일보는 시대의 어른이었던 선생의 삶과 그가 지키려 했던 가치를 세 차례에 걸쳐 되짚어 본 바 있다.

또한 민주 인사들의 사랑방이었던 선생의 자택이 폐가로 방치되고 있는 실상을 보도한 뒤 이를 보전하고 사적지로 지정해야 함을 주창하기도 했다. 장준하, 윤보선, 함석헌, 김대중, 김영삼, 조비오, 송기숙 그리고 이름 모를 광주 시민들과 계엄군에 쫓기던 시위대까지…. 선생의 자택을 드나들며 민주화를 염원했던 이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반대 투쟁의 호남 지역 거점으로 사용됐고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저지른 광주학살 당시에는 항쟁과 수습을 위한 대책회의가 열렸던 곳. 하지만 선생의 자택은 후손들이 빚을 못 이기면서 제 3자에게 이전된 후 거의 폐가로 방치돼 왔다. 광주일보의 문제 제기 이후 이제 늦게라도 선생의 자택이 사적지로 지정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늘 사설의 결론 또한 지난해 나갔던 사설과 다를 수 없다. “이제 광주시와 5·18 단체 등은 하루빨리 집을 매입해 보수하고 상세한 안내문도 비치해 지역사회의 자산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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