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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광주문화재단 정책연구교류팀장] 광주 100년의 역사, 박선홍 선생님을 기억하며

2017. 08.14. 00:00:00

예고도 없이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진초록색 중절모에 말쑥한 신사복 차림. 재단에서 출간하는 광주학 총서 ‘무등산’, ‘광주1백년’ 저자인 박선홍 선생님이셨다. “선생님, 혼자 오신 거예요?” “그렇지, 혼자 왔지.” 건강이 좋지 않아 매일 나가시던 전일빌딩 안 사무실도 나가지 않으니 바람을 쐬고 싶으셨단다. 그게 작년 1월쯤 일이었다.
박선홍 선생님은 1926년 광주에서 태어나 평생을 광주에서 살아온 광주 토박이다. 전국 최초로 시민의 곁에 있는 무등산을 시민이 가꾸고 보호하도록 하자는 무등산 보호운동을 이끌었고, 광주민학회 이사장으로서 향토사 발굴과 보존에 깊은 애정을 쏟으셨다.
“옛 광주의 상징과도 같았던 경양방죽과 태봉산, 운천저수지 매립 반대 운동을 했지만 결국 매립되고 말았어. 특히 경양방죽은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이름난 호수 다섯 곳 가운데 하나로 거명될 정도로 유명했지.” 이에 대한 상실감과 회한이 컸기에 사라져간 풍경과 풍속, 상부상조의 전통을 기록으로나마 복원하는 것이 의무감으로 느껴졌다 하신다.
지난 2012년 광주문화재단은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선생님은 1994년 출간된 자신의 저서 ‘광주1백년’ 총3권, 1998년 출간된 ‘무등산’에 관한 지적재산권을 재단에 기증했다. 이후 재단은 기존 도서에 빠져 있는 이야기를 새로 담아 개정 증보판으로 ‘무등산’, ‘광주 1백년 1·2·3’을 발간해 새롭게 독자들을 만나게 했다.
2015년 필자가 실무자로 참여해 ‘광주1백년 3’을 만들 당시 못다 한 광주1백년 이야기라 하여 새로운 내용을 대폭 추가했다. 하나하나의 소중함과 애정 때문에 그간 모아놓은 광주의 자료, 기억을 되살려 문장을 새로이 만드셨고 사실을 근간으로 한 광주1백년 연표를 작성하다보니 글의 순서나 사실 여부, 내용에 대한 편집회의를 여러 차례 하였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조광철 학예연구사, 사진가 신장용, 재단 김지원 팀장, 필자와 함께 수정과 보완·윤독을 정성스레 거듭 함께하셨다.
회의가 끝나면 재단 근처 ‘정애네’에 들러 저녁식사를 하곤 했다. 별다른 안주 없이, 차려진 반찬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 한잔을 참 좋아하셨다.
‘광주1백년 3’ 편집이 마무리 되어갈 무렵 ‘저자의 말’ 원고를 건네 주셨다. ‘이번에 ‘광주1백년’을 마무리하면서 못다 한 이야기도 몇 편 수록하였다.(중략) 흩어지고 멸실될 뻔한 자료들이 모여 문장이 되고 책으로 묶여지게 되어 다행스럽다. 이제 못다 이룬 대목은 다음 세대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부디 광주문화재단이 우리 광주 향토정신의 도도한 정통성과 문화자산의 곳간으로서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광주학’을 여는 구심점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건강 때문에 출판기념회를 못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해 12월 출판기념회까지 무사히 마쳤다.
해가 바뀌어 부쩍 쇠약해진 선생님을 걱정한 가족들 때문에 한동안 집에서만 지내는 게 답답하셨던지, 작년 그 날도 편집회의 때마다 걸어오던 그 길을 걸어 재단을 찾아오셨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오래 앉아 있으면 일에 방해 된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충장로까지 걸어가겠다’며 한사코 들어가라는 걸 따라나섰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재단 바로 뒤 광주공원 나무에 대해 그냥 갈 수 없다며 말씀하셨다. “광주공원은 일본, 몽고, 만주, 대만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여러 종류의 나무를 가져와 심었지. 그런데 해방 후 무등산도 그렇고 나무를 땔감으로 가져다 쓰니까 숲이 엉망이 되는 거야. 나무를 보존하고 식수를 다시 하는 일을 했지.” 마치 그날 그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듯 생생했다.
차도를 함께 건너 광주교에 이르렀다. 그런데 계속 따라 나서는 게 마음 쓰이셨는지 “이러면 다음엔 못 오지” 하시니 더 이상 갈 수 없어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선생님은 “미수(米壽)에 시작한 작업이어서 걱정스러웠지만 행복한 경험이었다.”고 그 시간들을 즐겁게 추억하셨다. 그후 설날 집으로 명절인사 드렸던 것이 선생님과의 마지막이었다.
지난 9일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 빈소를 찾았다. ‘뜻을 눈에 보이는 데에 두지 않고 영원한 데에 둔다’는 말 지재불후(志在不朽), 선생님은 그런 일만 골라 하셨던 것 같다. ‘선생님! 생전의 말씀처럼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어 지켜내야 할 광주의 모습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며 살겠습니다. 광주의 소중한 문화자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의 광주사랑 고맙습니다. 편히 쉬세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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