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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아날로그식 ‘편지 행정’과 광주의 미래

2017. 08.04. 00:00:00

“우체국 창밖엔 가을바람에 나뭇가지가 살며시 흔들리고 있어. 아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 거야.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보니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리고 있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걸 느낄 수 있어. 아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 거야. 난 이 편지에 우체국 창문에 비치던 햇살과 창밖에 스치던 따뜻한 바람을 동봉할 작정이야. 주희가 이 편지를 읽을 때 지금의 햇살과 바람을 느낄 수 있도록 말야.”
아련한 첫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클래식’에 나오는 연애편지 중 일부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다’ 했던 유치환의 시를 서두에 인용하더니, 자기도 우체국 창문 앞에서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편지를 쓰고 있다며,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고 싶어 천천히 써 내려가고 있노라 고백한다.
연애편지! 이 얼마나 설레는 단어인가.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이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대상이 있다는 건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지만 삼백예순날 하냥 그리워하면서도 정작 그 그리움의 상대에게 내 마음을 담아 보내는 편지를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한창때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었던 것처럼, 우리네 역시 학창 시절 글 좀 쓴다는 친구들은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고, 찐빵 한 접시를 얻어먹기도 했다. 그땐 그랬다. 연애편지에 넣을 네잎 클로버를 찾아 캠퍼스 잔디밭을 누비고, 어쩌다 발견하면 두꺼운 책에 끼워 넣은 뒤 잘 마르길 기다리곤 했다.

정성이 통했다 열정이 통했다

가을이면 은행잎이나 단풍잎 따위 색깔 고운 낙엽을 찾아 나섰으니, 예쁜 낙엽이나 네잎 클로버는 연인에게 보내는 이녁의 정성이요 사랑의 표시였다. ‘까똑 까똑’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으로 모든 것이 통하는 요새 아이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다.
굳이 연애편지가 아니더라도 훈훈한 편지를 받을 때면, 마치 깊은 산골에 쌓인 눈이 따사로운 봄 햇살에 녹아내리듯, 오래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좀처럼 ‘손편지’를 구경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들이 어디 그뿐이랴만.
과거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정치인들조차 종종 편지를 활용하기도 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1988년 총선 직후 냉랭해진 양김(兩金)을 한자리에 불러 모을 때 붓으로 편지를 썼다. “于先(우선) 高見(고견)을 들려주셨으면 해서 一筆(일필) 獻上(헌상)합니다. 下回(하회)를 기다리겠습니다.” 이에 김대중 전 대통령도 육필로 정성 어린 답신을 보냈다고 한다.
빨간 우체통마저 보기 힘들어진 요즘이지만, 아직도 편지로 재미(?)를 보고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윤장현 광주 시장이다. “회장님을 아직 뵙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회장님께서 일궈 오신 기업 신화와 소신 있는 경영 철학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 얼마 전 앰코 광주 공장을 직접 방문해 앰코가 이루어가는 신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기업이 광주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큰 축복으로 여겨집니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이자 세계 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2위 기업인 앰코테크놀로지 김주진 회장에게 보낸 윤 시장의 편지 일부다. 김 회장은 국내 최초로 반도체 분야에 뛰어들고 한국 최초로 컬러TV를 생산한 아남산업 김향수 회장의 장남이다. 윤 시장이 편지를 보낸 것은 앰코코리아가 서울 사업장을 인천 송도로 옮긴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분산 배치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광주는 마음 한켠에 늘 빚이 있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윤 시장의 친서를 받은 김 회장도 곧바로 답신을 보내왔다. 결국 앰코코리아는 내부 논의 끝에 서울 사업장의 인력과 설비를 인천과 광주로 나눠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광주 사업장 근무 인원은 총 4000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쾌거였다. 조금 과장하자면 윤 시장은 편지 한 통으로 새로운 500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한 셈이다.

국내외 기업들이 몰려오다

전기자동차 투자 유치를 위해 윤 시장은 인도 마힌드라 그룹의 아난드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비록 아난드 회장님을 아직 뵙지는 못했지만, 국내에 출간된 마힌드라 그룹을 소개한 책을 통해 회장님의 경영 철학과 비전을 느낄 수 있었으며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결국 몇 번의 편지가 오간 후 인도 현지 방문까지 이뤄진 끝에 아난드 회장은 “(전기차 분야) 협력과 시너지의 길에 동행하겠다”고 약속하기에 이른다.
중국의 신흥 자동차 기업인 조이롱(九龍)차의 광주 투자 결정도 “자동차도시 광주에 투자해 달라”는 윤 시장의 편지가 시발점이 됐다. 이러한 모든 성과는 의례적인 문구가 담긴 짧은 공문만으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최근 국내 기업들의 광주행(行)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윤 시장의 진정 어린 읍소가 통했기 때문이다.
김치냉장고 ‘딤채’와 ‘위니아에어컨’을 생산하는 ㈜대유위니아가 본사와 공장을 광주 하남산단으로 옮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노조가 본사 이전을 반대하는 난관도 있었지만 윤 시장은 이 문제 역시 진정성으로 돌파했다. 광주를 찾은 노조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광주형 일자리’를 소개하고 미래 먹거리 창출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감 없이 전한 것이다.
윤 시장이 처음 제안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여기저기 너무 많이 소개가 된 터라 이 자리에서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윤 시장은 1997년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낼 당시, 아시아자동차 부도로 2000여 명의 지역 근로자가 해고되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노사는 공동 운명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국정과제에 포함되고 연구용역비가 추경안에 반영된 것도 퍽 고무적인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노동 정책의 방향과 ‘광주형 일자리’가 정확히 일치한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바야흐로 광주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다. 광주의 꿈이 영글고 있다. 임기 초반에 사람 하나 잘못 쓰는 바람에 이런저런 말들도 많았지만, 이제 윤 시장의 일자리 창출에 대한 열정과 광주를 생각하는 간절한 마음만은 믿고 지켜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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