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뉴스를 보면 장기 가뭄으로 쩍쩍 갈라지는 논경지와 저수지 바닥을 보고 한숨만 내쉬는 농부님들의 한숨소리만 들린다. 다행히 우리 지역은 비교적 잘 갖춰진 수리시설과 준비된 저수지 담수 덕분에 모내기를 수월하게 마쳤다. 다만, 마늘과 양파 등 밭작물은 계속된 가뭄 탓에 밑이 덜 든 상태로 수확하고 있다.

상반기에 농촌이 가장 바쁜 시기는 5월 말경부터 6월 중순까지이다. 모내기 준비작업인 물잡기와 논 고르기, 모심기 그리고 지난해 심어놓았던 밭작물을 거둬들이는 시기이다.

농번기에는 면사무소를 비롯한 행정·대민기관은 조금 여유가 있다. 농사에 바쁘다 보니 농민들이 특별한 일 아니면 면 소재지에 나오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골 면장’이 사무실만을 지키며 찾아오는 주민과 대화하고 민원행정만을 처리하기 위해 기다린다는 것은 본분이 아닐 터다. 그동안 대부분 ‘찾아오는 민원’을 해결했지만 바쁜 시기에는 직접 영농현장을 돌며 면민과 함께해야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들판으로 어르신들을 찾아뵈려 하니 빈 손으로 인사드리기에는 멋쩍어서 뭔가 ‘새참거리’를 가지고 방문해야겠다고 생각, 동료들과 상의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70세 이상 어르신들이 농사짓는다는 점을 감안, 아이스크림을 새참으로 정했다.

예전의 농촌 풍경을 돌이켜 본다. 모내기 논에 물을 대어 소가 써우레를 이끌고 “이랴! 이랴!!” 하고 모심는 풍경이 전형적이다. 두레와 품앗이로 모를 심고 그 뒤에서는 모쟁이가 모심는 사람의 등위로 부족한 모를 휙 던진다. 그 여파로 첨벙하고 논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 쓰면 “아이고 모쟁이 이놈아 살살 던져라”고 웃는 소리 등 왁자지껄했다.

하지만 최근 농촌 풍경은 사뭇 다르다. 논 주인은 논둑을 정비하고 몇 대의 트랙터들만이 논 가운데를 채우고 돌아다닐 뿐이다. 모심을 땐 모를 나르는 아낙 한 사람과 앞·뒤와 옆 모심는 줄만 바라보며 묵묵히 이앙기를 모는 사내 한 사람, 밭에서는 나이 드신 노부부가 별다른 대화도 없이 마늘과 양파 등 밭작물을 뽑는 애처로운 모습뿐이다. 마음이 아리고 괜스레 눈물이 나온다.

사정이 이런 데 무슨 쉴 시간이 있고 새참이 있고 시원한 갈증을 풀어주고,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있겠는가? 자식들은 객지에서 산업역군이니 판·검사니, 사장이니, 돈을 잘 번다느니 할 뿐…. “그래, 이젠 면장이 면민의 아들이지.”

아이스크림을 들고 마을을 보름 이상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다녔다. 토·일요일을 불문하고 매일 오전10시부터 12시까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가느다랗고 긴 논두렁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굴곡이 많은 밭두렁을 타면서 새까맣게 그을린 구릿빛 어르신을 만났다.

“어무이. 아부지 새참 가져왔습니다.”

주민들은 일에만 몰두하시다가 깜짝 놀라며 가무잡잡한 눈빛이 휘둥그래 진다. “아따! 우리 면장님이 뭔 일이당가? 뭔 일 있어?”

“아니라우! 우리 어매, 아부지가 일하싱께 아들이 새참 가져왔소!”

“오매 80 평생에 면장이 새참 들고 오는 것 처음 보내.”

면 직원들의 ‘깜짝 방문’에 어르신들은 잠깐 틈을 내 허리를 펴고 곁을 내준다. 농사는 어떻고, 작황은 어떻고, 가뭄대책은 어떻고, 아랫동네는 어떻고, 동네 돌아가는 것은 어떻고, 자식들은 어떻고….

순간이나마 어르신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나면 그분들의 얼굴에 스치는 행복을 바라보게 된다. 덩달아 우리 일행도 보람을 찾고 행복감을 맛본다.

세입 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하는 데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찾고자 하는가? 시골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이여, 이 조그마한 보람과 행복을 같이, 함께 누려보지 않으시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