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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슈즈트리’ 철거가 남긴 교훈

2017. 06.07. 00:00:00

지난 3월 8일 오전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 앞. 여느 때 처럼 출근길을 재촉하던 월가의 직장인들은 난데 없는 소녀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브론즈 동상이 하룻밤 사이에 등장한 것이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겁없는 소녀’상(像·Fearless Girl)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보스톤 투자회사인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는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남성중심의 월가에 경종을 울리는 이벤트를 고민하던 끝에 공공조형물을 세우기로 했다. 유리천장으로 좌절하는 여성들이 기업의 여성리더로 성장하는 분위기를 장려하기 위해서였다. 유명조각가 크리스텐 비르발이 제작한 ‘겁없는 소녀’상은 이름과 달리 아담하고 사랑스럽다. 키 130cm, 몸무게 110kg. 양 옆구리에 팔장을 끼고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의 ‘댄서’와 유사하다. 하지만 드가의 소녀상이 연약한 이미지라면 월가의 소녀상은 담대한 투사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겁 없는 소녀’상은 순식간에 뉴욕의 명물로 등극했다. 수많은 관광객과 뉴요커가 동상옆에서 포즈를 흉내내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SNS를 타고 급속히 퍼져나갔다. 작품의 스케일 보다는 메시지와 최적의 장소를 골라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낸 결과였다.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울역 고가 ‘서울로’의 설치 작품 ‘슈즈트리’(Shoes Tree)가 논란끝에 철거됐다. 온갖 화제를 뿌리며 일반에 선보인지 9일 만이다. 사실 ‘슈즈트리’는 서울시의 야심작이었다. 시민 보행길로 조성되는 서울로와 서울역 광장을 잇는 높이 17m, 길이 100m의 설치작품을 통해 도시재생과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지난 2011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정원 박람회 첼시플라워쇼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황지해 작가에게 상징조형물을 의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낡은 신발을 예술로 되살려내는 콘셉트로 폐기된 신발 3만켤레를 쌓아놓은 ‘슈즈트리’가 설치되자 시민들의 쉼터를 퇴색시키는 흉물이라는 비난이 쇄도한 것이다. 특히 1억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번 ‘슈즈트리’ 논란은 공공조형물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 소중한 계기였다. 근래 유행처럼 전국에 들어서고 있는 공공조형물 가운데 상당수가 관(官)의 전시행정에 의해 ‘기획된’ 산물이다. 작품에 대한 메시지와 장소에 대한 고민없이 일부 단체장의 ‘입김’에 의해 추진되다 보니 애물단지로 전락한 경우가 허다하다.
영국에는 공공장소에 세워진 흉물스런 조형물을 선정해 망신을 주는 ‘저게 뭐야’(What’s That Thing?)상이 있다. 지난 2014년부터 시사주간지 ‘The Spectator’가 매년 최악의 조형물을 선정해 수상하는 상인데 심사기준은 시민들의 이메일 제보라고 한다. 그래서 말인데,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광주에서도 ‘저게 뭐야 상’을 뽑는다면 불명예의 주인공은 뭘까? 평소 거리를 지날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흉물은?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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