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다.’ 많이 들어본 글귀다. 그렇다. 새 대통령이 서명 때 자주 애용하는 글귀다. 일전 대통령이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어떤 학생이 사인을 받고자 공책을 꺼내는 동안 함께 쭈그려 않아 있었던 소탈한 모습이 보도돼 화제가 됐던 그 사인에도 있던 글귀다. 이 글속에 함의된 뜻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압축하긴 어렵지만 현대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물신주의’보다 우선순위가 ‘인본주의’라는 얘기다.

성경(마태오)의 (하늘나라)포도원 이야기가 있다. 요약하자면 포도원 주인이 장터에 나가 인부를 구해 포도원 일을 시키는데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다. 일꾼들은 한꺼번에 똑같이 일을 시작한 게 아니라, 이른 아침, 아홉시쯤, 열두시, 오후 3시와 5시쯤에 각각 포도원에 투입됐다. 일이 끝나고 임금을 주는데 맨 나중에 온 일꾼들부터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주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가. 꼬박 하루를 일한 사람과 뒤늦게 일을 시작한 사람의 임금이 똑 같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의 얕은 눈으로 보면 불공평하다. 그러니 하늘나라 일인 것이다.

뒤늦게 포도원에 투입된 인부들의 하소연도 들어보자.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라고 했다. 즉 경쟁대열에서 이탈한 상대적 무능력자인 소외계층 사람이다. 오래 전 영화 ‘월컴투 동막골’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인민군 군관이 동막골 최고 어른에게, 고함 한 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들을 휘어잡는 영도력의 비결이 뭡니까 라고 묻자 “뭐를 좀 마이 맥여야지”라고 대답했다.

새 정부도 대통령 취임 후 첫 업무지시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구성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실업자 제로인 전 국민의 정규직화로 대미를 장식해야 한다. 일자리가 곧 밥이 아닌가.

필자가 아는 회사의 새 사장은 내부에서 승진한 사람이다. 그는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인적청산이 아닌 인적쇄신을 강조했다. 전자가 아웃을 상징한다면 후자는 인(仁)이다. 인은 살림의 문화다. 인적쇄신은 곧 그 사원의 능력에 맞는, 적재적소의 인력배치(발령)로 이어질 것이다. 인력배치에 앞서 승진인사도 예고돼 있다. 사장은 회사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역설적으로 잘 알고 있다는 점이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거다. 사람은 기계가 아닌 이상 업무 역량의 차이가 난다. 만약 차이를 인사에 적용해 서열을 세운다면 쇄신은 곧 청산이 되고 말 것이다.

상대적 소외자들의 박탈감은 당장은 아닐지라도 조직의 화합에 부작용으로 작용할 게 뻔하다. 다 함께 회사의 발전에 발맞춰야겠기에 누구 하나 승진 인사에서 낙오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 많지 않은 사원 대다수는 하위직이다. 만약 대승적 차원에서 전사원의 승진이 이루어진다면 소폭이지만 급여의 증가로 이어진다. 급여의 증가는 소위 소득을 늘려주어 구매력을 향상시키는 임금주도성장이 되어 침체한 내수 진작의 작은 밑거름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급격히 늘어난 사내 비정규직 문제도 성장을 위한 소득 재분배 차원에서, 아니 사람이 먼저인 인본주의적 차원에서 정규직화를 서둘러야 할 때다. 이제 소수 재벌에 의한 수출입국 시대는 장기불황으로 세계무역 전체가 위축되면서 끝이 났다. 그래서 내수 활성화를 위해서도 먼저 모든 근로자가 안정된 직장과 안정된 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다운 나라라고 말 할 수 있다. 하늘나라 포도원 이야기나 영화 월컴투 동막골의 명장면은 사실 하늘나라나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이뤄내야 할, 이뤄나가야 할 우리가 사는 세상, 아름다운 땅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