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택한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컸던 만큼 새로운 대통령과 그가 이끌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기대가 크다.

요즘 자꾸 김대중 대통령과 링컨 대통령이 생각난다. 나는 2009년 8월 DJ를 보내며 광주일보에 ‘DJ 시대, 이제 막 시작이다’라는 글을 투고했다. 1997년 내가 14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처음으로 지역 신문에 기고한 그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민주, 인권, 평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DJ를 코리아의 영웅으로 재탄생 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과연 우리가 우리의 민주주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느냐 회의적으로 보느냐, 세계 속의 우리의 위상에 대해 확신을 가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지역과 당, 그리고 개인적 호 불호 관계를 떠나 미국인들이 링컨을 추앙했듯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DJ를 추앙해야 한다. 미래는 우리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DJ의 시대, 이제 막 시작이다.”

그 글을 쓴지 약 8년 만에 다시 광주일보에 이 글을 기고한다. 놀라운 것은 그 때 마음이나 지금 마음이 같다는 것이다.

1860년 노예해방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링컨이 당선되자 남부 주들은 하나 둘 씩 연방에서 탈퇴하기 시작했다. 건국 이후 70여년을 버텨온 미국 연방이 해체되기 시작했고, 남북전쟁의 내전이 터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링컨은 의회연설에서 미국이야말로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최고의 희망”이라고 자부했다.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 링컨은 국민들에게 미국 민주주의와 그 가치에 대한 절대적인 자부심과 긍지를 드러냈다.

링컨은 내전의 혼란 속에 미국의 가치와 의미를 되물었다. 그리고 내전 후에 미국을 어떤 가치위에 다시 세워야하는지를 고민했다. 이런 고민 속에서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정부”라는 구절로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이 탄생했다. 그런데 그 연설에서 링컨은 한 번도 ‘미국’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링컨에겐 나라의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나라가 추구하는 가치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대통령 후보들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적폐 청산, 안보, 경제, 민생, 개헌 등 산적한 현안에 대한 다양한 공약과 그에 대한 공방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무엇이며, 어느 가치에 세워져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통일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펼 것이며, 그리고 세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우리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큰 그림보다는 작은 그림을 그리는데 분주하다. 그래서 DJ와 링컨이 그립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클 수가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간에 선거후풍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현실이다. 적어도 대통령에 대한 과거의 역사는 우리에게 시리고 아픈 현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기억해야 한다. 이런 비슷한 선거를 통해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DJ를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큰 획을 그으신 분”으로 송찬했다. 그러나 아직은 DJ가 민주주의, 평화, 인권의 사도(使徒)로서 우리 시대와 대한민국을 대표할 상징적인 인물로 재탄생되고 있지 않다. DJ의 역사적 가치는 향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성숙에 달려있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국가의 위상에 달려있다.

링컨이 이렇게 말했다. “절대 좌절해서는 안 된다. 좌절하지 않고 인내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의 끈을 굳게 붙잡아야 할 때이다. 8년이 지났지만, ‘DJ 시대, 이제 막 시작이다’는 여전히 유효하다.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볼 때 8년은 아무 것도 아니다. 링컨이 진정한 미국 민주주의 영웅으로 추앙받기 까지 무려 100년이 걸렸다. 진정한 ‘인동초(忍冬草)’가 피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겨울을 나야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링컨이나 DJ같은 대통령이 당장 탄생하지 않아도 좋다. 그와 같은 지혜와 믿음을 갖는 국민들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