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자리를 못 잡던 자녀가 은행에 취업했다는 전화였다. 요즘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절에 은행에 취업하다니. 전화 속 그 분 음성은 적잖이 떨렸고, 넉넉지 않은 살림에 대학까지 보낸 사정을 알기에 나도 내 일처럼 기뻐했다. 그런데 은행? 전화를 끊은 후, 불현듯 문 연지 나흘 만에 가입자가 10만을 넘어선 인터넷 은행 소식과 앞으로 은행원은 점점 더 설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뉴스가 생각났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라 한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한 새로운 산업 변화가 몰려오고 있다며 엄청난 사업기회가 될 수 있는 이 파도를 먼저 올라타야 한다고 한다. 정재계, 학계 할 것 없이 입 모아 한목소리다. 우리 사회 익숙한 화법이지만 초기에 뒤처지면 못 따라잡는다는 식의 압박도 따라붙는다. 장삼이사의 문외한이지만 의문이 남는다. 과연 이 파도는 우리 모두 올라탈 수 있는 파도인가.

얼마 전 신문에서 본 기사는 오늘날 혁명이라고까지 말해지는 정보통신기술의 변화가 과연 모두에게 좋은 것인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스마트폰 혁명이 일어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이전 주기에 비해 절반 가까이 떨어진 1.3% 증가에 그쳤다 한다. 거칠게 말해 첨단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생산성 증가에 별 도움이 안 되었다는‘생산성 역설’이란다. 특히 일자리 측면에서는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된 1차 산업혁명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 낸 것에 비해 4차 산업혁명은 그 핵심전망이‘고용의 대폭 축소’라고 경계해 말하는 이도 있다 한다. 변화의 속성이겠지만 다가 올, 혹은 이미 와 있는 변화가 모두가 반기는 변화는 아니란 얘기다.

환갑을 넘긴 부모님이 스마트폰을 산다고 할 때 자녀가 말리던 때가 있었다. 왜 쓸데없이 스트레스를 받느냐는 자녀의 효심어린(?) 마음이었다. 이젠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일상 풍경이 되었다. 회피한다고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과실을 풍성히 거두되, 그 과실을 변화에서 소외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일자리 나눔이고 그것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과 함께라면 더욱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첨단 기술이 실용화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해도 온라인, 기계장비로 대체된 일자리는 그 전에 비해 턱없이 줄어든 일자리이다. 그것을 기업은 비용절감이라 부르지만 바티칸의 그분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중죄라고 본다.

‘해고나 공장 폐쇄, 구조조정이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일자리를 없애는 사람은 중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람 사는 사회는 사람과 만나는 맛이 있어야 한다. 통장 들고 찾아온 어르신을 만나 건강을 묻는 은행원, 엉뚱하지만 재치 있는 발달장애 판매원, 밝은 얼굴로 인사하는 하지장애 톨게이트 요금정산원들은 당연하지만 숫자로만 환산되는 비용이 아니다.

안 그래도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쏟아지는 미래전망에 한 장면을 더 얹는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젊은 청각장애인이 마주서 ‘오늘 일이 너무 많은데요 ㅠㅠ’,‘그러게 ^^’하며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나누는 미래이다. 그 어르신은 앞으로 나의 모습이고 그 청년은 당신의 자녀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