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3일,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이 개관했다. 개관기념전은 하정웅컬렉션 ‘이우환전’(3월3일∼6월25일)이다. 이 감개무량한 경사가 있기까지 과정은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다.

1992년 지방에선 처음으로 국공립미술관으로서 광주시립미술관이 개관했다. 그러나 의욕 넘치는 훌륭한 건물은 세워졌지만, 간판만 있을 뿐 미술관으로서의 내용은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수장품은 150여 점으로 수장고는 이름뿐인 창고였다. 시의 예산과 미술관문화의 의식, 학예연구원 부족 등의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며,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다.

1993년 강영기 광주시장과 차종갑 미술관장으로부터 ‘미술관을 도와주고, 키워주고, 광주를 사랑해 주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내 미술 컬렉션의 기증을 부탁받았다.

1973년 처음으로 부모의 고향을 방문하고, 서울 창덕궁에 있는 한국 유일의 국립근대미술관을 견학했다. 그 건물은 영친왕과 이방자비가 거처했던 석조전 건물이며 수장품이 350여 점 밖에 없다는 것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라의 문화를 자랑하는 미술관의 내실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의 문화 실태에 가슴이 아팠다.

나는 광주시립미술관의 요청에 응했다. 그동안 수집해 온 미술작품을 한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의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는 뜻에서 기증을 결심하고 광주시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사실 광주시와 인연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해에 재일교포 1세 화가 전화황 화업 50주년 개최 준비를 위해 광주시를 방문, 한 사람의 시각장애인과의 만남에서 광주맹인복지협회 설립과 회관 건설의 발기인이 된 것이 그 인연의 시작이다.

그렇게 해서 제1차(1993년) 212점의 기증을 시작으로, 제2차(1999년), 제3차(2003년), 제4차(2010년), 제5차(2012년), 제6차(2014년)까지 총 2513점이 광주시립미술관에 기증되었고, 나의 기증작품은 소장품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그 사이에 ‘이름도 없고 가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작품을 기증했다.’ ‘이름을 팔아 명예욕과 정치적 야심을 채우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 재일교포라는 차별과 멸시, 편견에 의한 생각지도 못한 비난과 비방에 아프고 외로웠다. 하지만, 그후에도 나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기증을 계속해 왔다.

나의 기증 작품이 늘어나면서 수장고가 부족해져 새롭게 미술관을 세우게 되었다. 그때, 광주시는 하정웅미술관을 독립해서 건립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2014년 중외공원 내에 하정웅미술관 건립이 다시 계획되었지만 시장의 교체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세 번째 만에 윤장현 시장의 영단으로, 구도지사관사였던 역사적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하정웅미술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나의 좌우명은 ‘명력력 노당당’이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을 하면 명백히 나쁜 결과로서 나타난다는 가르침이다.

1995년에는 광주시명예시민증을, 2001년에는 광주시립미술관 종신명예관장의 위촉을 받았다. 그리고 광주시립미술관의 주요 전시회로서 하정웅 청년작가초대전을 매년 개최하게 되었고, 올해로 17회의 역사를 맞이하는 청년작가초대전은 지금까지 89명의 젊은 작가들을 배출했다.

2003년 광주시는 중외공원 내 1.2㎞를 하정웅 명예도로로 명명했다. 또한 인연을 이어온 광주시각장애인협회는 오는 4월26일, 설립 40주년 기념식을 맞이하고 나를 명예회장으로 추대한다고 한다.

나는 많은 인내와 노력으로 지금까지 걸어왔지만, 광주시로부터 받은 이러한 은덕은 미술인생에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빛을 비추면 그 빛은 나에게 반사되어 빛난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나서야 아름다운 꽃이 핀다. 미술관 개관을 통해, 광주시로부터 나 자신이 도움을 받고, 키워지고, 사랑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좋은 정신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신을 잘 사용하는 것이다’라는 데카르트의 격언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변함없이 지지해 준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