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세진 시인·문화비평가] 누가 공간에 시간을 비출 것인가
2017년 03월 23일(목) 00:00 가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1관 ‘Node 5:5’ 앞에 다시 섰다. 붉은 레이저가 거대한 검은 공간으로 날아가 공간을 분할하기 시작했다. 검은 공간 여기저기서 하얀 깨어남이 나타나고, 깨어난 공간들은 파열과 연결, 합병과 산개(散開)를 연출했다. 인간의 문명이 저런 형상을 가졌을 것이었다. 인간의 문명을 10분의 영상으로 표출하라면 저렇게 그려질 것이었다.
검은 공간은 문명의 발흥을 기다리는 혼돈이었고, 쏟아지는 붉은 레이저는 문명을 파괴하거나 깨우는 계기들이었다. 반응하는 공간이 쏟아내는 하얀 빛의 온갖 형상들은 문명의 양상이었다. 레이저가 닿을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온갖 격한 소리들은 역사적 격랑에 반응하는 인간과 공동체의 음성이었다.
인간의 생은 ‘Node 5:5’가 보여주는 것처럼 점·선·면, 시간의 복잡한 직조다. 무수한 생들이 공간에서 시간에 의해 겹쳐지고 나누어졌다. 그렇게 문명과 역사가 탄생하고, 인간들은 소리를 내며 다른 생을 밀어내거나 다가가거나 겹쳐졌다. 레이저와 만나 만들어지는 일직선, 수직선, 수평선, 원, 삼각형, 사각형의 구획은 인간의 문명이 담긴 그릇의 형상이었고, 이념과 생각의 구분들이었다. ‘Node 5:5’ 앞에 서서 인간의 문명을 그렇게 그려보았다.
전시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키네틱아트 ‘Node 5:5’를 두 번 볼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아쉬움을 달래다가 잠시 이런 생각을 했다.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운 좋게도 어느 도시도 갖지 못한 아주 커다란 문화의 배에 영구 탑승한 기회를 가진 것이라고. 다만 그것을 제대로 모르고 바로 머리 위에서 펼쳐지는 향연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난 1월 말, 작가들과 직접 만났을 때, 작가들은 해석의 권한을 관객들에게 주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예술작품이 탄생하여 관객들에게 전해진 순간부터 관객의 해석이 오독(誤讀)이자, 곧 정독(正讀)이라는 사실을, 관객에게 권한을 주는 것은 마땅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개관 직후 ‘산해경’을 주제로 첫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콘텐츠가 적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던 때였다.
‘산해경’은 미디어산업에 상상력을 제공한 동양의 보고(寶庫)다. 일본은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반가운 마음에 세미나장으로 달려갔다. 자리를 얻지 못할까 걱정했다. 그런데 빈자리가 많았고, 광주가 지향하는 산업방향에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는 주제의 장이었음에도 콘텐츠를 걱정했던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다. 비판과 참여가 따로 놀고 있는 모습이었다.
발걸음이 뒤따르지 않는 질타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문화는 공간이 시간과 사람을 통해 직조되는 것이다.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데 완벽한 고속도로를 보여 달라는 것은 ‘문화’를 만들어 갈 참여자로서의 존재를 스스로 지우는 것이다. 공간이 주어지면서 그 공간 안에 들어설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는 누군가에게 의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권리로 주어지는 것이다. 콘텐츠가 아직 다 만들어져 있지 않다면 더 많은 권리가 지금 주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비판할 일이 아니라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일 수도 있다.
라이브러리파크에는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전시회가 있었다. 전시 공간 벽면에 타고르의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우리에게로 오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자격을 성취할 수 있다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글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쌓이면서 문화전당에는 이전에 없던 것들이 하나 둘 더해지고 있다. 거대한 스크린 같은 공간에 이 도시의 시간이, 다른 도시의 시간이, 먼 이방의 시간이 찾아와 실 꾸러미를 풀어내고 있다. 멋진 옷 한 벌이 나타날 것 같기도 한데, 욕심으로는 그 옷이 아주 오랫동안 완성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공간에서 실을 들고 찾아왔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실 꾸러미로 아름다운 옷을 짜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라고. 질문에 답할 사람들은 멀리 있지 않다. 욕심으로는 남에게 주지 않고 한 자리 참여하고 싶지만 그럴 필요 없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자리가 직조공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의 생은 ‘Node 5:5’가 보여주는 것처럼 점·선·면, 시간의 복잡한 직조다. 무수한 생들이 공간에서 시간에 의해 겹쳐지고 나누어졌다. 그렇게 문명과 역사가 탄생하고, 인간들은 소리를 내며 다른 생을 밀어내거나 다가가거나 겹쳐졌다. 레이저와 만나 만들어지는 일직선, 수직선, 수평선, 원, 삼각형, 사각형의 구획은 인간의 문명이 담긴 그릇의 형상이었고, 이념과 생각의 구분들이었다. ‘Node 5:5’ 앞에 서서 인간의 문명을 그렇게 그려보았다.
개관 직후 ‘산해경’을 주제로 첫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콘텐츠가 적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던 때였다.
‘산해경’은 미디어산업에 상상력을 제공한 동양의 보고(寶庫)다. 일본은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반가운 마음에 세미나장으로 달려갔다. 자리를 얻지 못할까 걱정했다. 그런데 빈자리가 많았고, 광주가 지향하는 산업방향에 상상력을 제공할 수 있는 주제의 장이었음에도 콘텐츠를 걱정했던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다. 비판과 참여가 따로 놀고 있는 모습이었다.
발걸음이 뒤따르지 않는 질타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문화는 공간이 시간과 사람을 통해 직조되는 것이다.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데 완벽한 고속도로를 보여 달라는 것은 ‘문화’를 만들어 갈 참여자로서의 존재를 스스로 지우는 것이다. 공간이 주어지면서 그 공간 안에 들어설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는 누군가에게 의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권리로 주어지는 것이다. 콘텐츠가 아직 다 만들어져 있지 않다면 더 많은 권리가 지금 주인을 찾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비판할 일이 아니라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일일 수도 있다.
라이브러리파크에는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전시회가 있었다. 전시 공간 벽면에 타고르의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우리에게로 오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자격을 성취할 수 있다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글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쌓이면서 문화전당에는 이전에 없던 것들이 하나 둘 더해지고 있다. 거대한 스크린 같은 공간에 이 도시의 시간이, 다른 도시의 시간이, 먼 이방의 시간이 찾아와 실 꾸러미를 풀어내고 있다. 멋진 옷 한 벌이 나타날 것 같기도 한데, 욕심으로는 그 옷이 아주 오랫동안 완성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공간에서 실을 들고 찾아왔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실 꾸러미로 아름다운 옷을 짜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라고. 질문에 답할 사람들은 멀리 있지 않다. 욕심으로는 남에게 주지 않고 한 자리 참여하고 싶지만 그럴 필요 없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자리가 직조공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