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의 왕 칸다울레스의 목동이던 기게스(Gyges)는 지진이 일어난 후 생긴 동굴 안에서 거인이 끼고 있던 반지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 반지의 흠집 난 곳을 안으로 돌리면 자신이 투명인간이 되고 밖으로 돌리면 자신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궁전에 들어간 기게스는 마법 반지를 이용하여 투명인간이 된 후 왕비를 간통하고 칸다울레스왕을 암살하여 왕위를 찬탈하고 스스로 리디아의 왕이 되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인용)

대통령이 탄핵·파면되었다. 탄핵결정사유는, 대통령이 사인인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허용하고 그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여 미르와 K스포츠 설립 지원 등 최순실의 사익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하였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두 은폐함으로써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을 위배하였고,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문건을 최순실에게 유출하여 국가공무원법의 비밀엄수의무를 위배하였다는 것. 이러한 국민에 대한 신임위반행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대국민담화와 달리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는 등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아 그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규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 등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이러한 탄핵국면에서 국민이 느끼는 분노와 허탈감은 소위 민주주의라는 틀 속에서 자신이 뽑은 대통령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지배당하였고,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그를 위해 남용하였으며 결국 그 권한과 권력을 그 자에게 부여함으로써 국민이 그에 의해 통치당하는 굴욕적인 상황을 초래하였다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국민의 대리인 정부가 공권력을 사유화했다는 것으로서 우리가 그 동안 그토록 믿고 의존해왔던 ‘대의민주주의’라는 것이 실제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최악의 극단적 결론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철인정치를 꿈꾸면서 통치자는 ‘최고의 전문가로서 현명하고 명예욕과 사리사욕이 없으며 오로지 국민들의 이익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전(前) 대통령은, 탄핵과정에서 보여준 정신세계, 전문적인 능력과 역량, 직업적 소명의식 및 책임감 등에 있어서 이러한 지도자로서의 덕목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보편적 법칙이 되어야 하는 준칙에 따라 행동하지 않았고, 국민과 국민의 자유, 행복을 위한 목적이 아닌 국민을 단순히 수단으로 여기는 일에 힘써왔음이 드러났다.

도대체 누가 그들에게 사악한 ‘기게스의 반지’를 끼워준 것일까. 이른바 ‘헬조선’이란 말을 쉽게 내뱉으면서 스스로를 자학하고 자조하였던 바로 우리들이 아무런 역량도 능력도, 그리고 책임감도 없는 그들에게 그 반지를 기꺼이 선물하여 바쳤던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사실 민주주의 시스템은 최고의 정치체제는 아니다. 문제도 많고 부작용도 많다.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위대한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시민 개개인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주사회의 시민이라면 아무리 정치가 잘못되어 현실정치가 역겹고 화가 나더라도 ‘정치혐오’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그럴수록 끊임없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며 건전한 토론과 대화를 통해 생각을 고치고 수정하는 문화가 자리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른바 ‘철인’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국민이 허용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시대정신을 가지고 소통하는 자세로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고민하며, 그리고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대통령이라도 우리 곁으로 오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가장 저열한 인간들’에게 지배당하게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