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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청와대 독백-그네일기

2017. 03.17. 00:00:00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다.”-무명씨(無名氏)

2016년 10월 x일(제목:따뜻했던 그분)
엄마 아빠 따라 이 집에 들어온 게 내가 열두 살 되던 해야. 신당동 살 때야 좋았지. 말벗 하나 없는 궁궐 같은 청와대는 별로였어. 더군다나 엄마가 흉탄에 돌아가셨을 때 난 덮고 자던 이불을 누가 걷어 가버린 거 같았어. 미친 듯이 피아노를 두들겨도 사라지지 않는 외로움. 지워지지 않는 두려움.
그때 어떤 분이 편지를 보내오신 거야. 엄마가 꿈에 나타나 나를 보호해 달라고 하셨다는 거지. 그분을 뵈면서 나는 전신에 전류가 흐르는 거 같았어. 옆에서는 별말들이 다 많았지. 나도 알아. 근데 아빠는 그분의 영험함과 충성심을 믿었어. 그래서 아빠는 그분이 만든 선교구국단을 구국여성봉사단으로, 나중에는 새마음봉사단으로 키워 주셨잖아. 사람들은 아빠가 나와 그분 사이를 마뜩찮아 하셨다고들 하지만 그건 잘 모르겠어.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난 정말이지 두려웠어. 갑자기 천애고아가 된 난 그분의 보호와 배려가 없었다면 밥 한 술 뜨지 못하고 잠 한숨 들지 못했을 거야. 18년이나 살았던 내 집에서 쫓겨난 우리 삼남매에게 세상은 너무 매정했어. 환호는 간데없고 독재자의 딸이라는 야유만 들리는 거야.
그분과 그분 가족들은 달랐어. 나를 위로해 주고 보살펴 주었지. 육영재단 운영도 그분과 순실이가 아니었으면 어림없었을 거야. 아빠에게 물려받은 재산도 어찌 그리 크게 늘릴 수 있었는지. 20년 전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난 엄마를 잃었을 때만큼 슬펐어. 다행히도 그분은 나를 돌봐 줄 후계자를 미리 예비해 놓으셨어. 순실이가 그분이 점지해 놓은 내 미륵이고 내 수호신이야.
2016년 10월 x일(제목:아빠의 유업)
순실이가 아빠의 유업을 이어 보라고 권했을 때 난 많이 망설였어. 솔직히 말하면 난 정치 같은 거 하기 싫었어. 실은 그 무렵부터 내가 생각해도 내 말이 좀 흩어지는 게 느껴졌거든. 마지못해 순실이가 챙겨 준다는 약속을 받고 정계에 진출한 거야. 난 퍼스트레이디 시절 그랬던 것처럼 이제 미소 짓고 손 흔들기만 하면 되었지.
내가 왜 정치를 시작했냐고? 딱 하나, 아빠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 우리 후손들이 아빠더러 친일파니 독재자니 하고 비난하는 것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어. 오늘따라 유난히 엄마 아빠가 그립고 그분의 예지가 절실해져. 순실이라도 있으면 든든할 텐데. 전화하기도 어렵게 되었으니 난 또 절해고도에 혼자 있는 신세야.
순실이에게 연설문 좀 손봐 달라고 한 게 그리도 큰 잘못인가. 순실이에게 입을 옷 좀 코디해 달라는 게 그리도 큰 잘못인가. 재벌들의 협조를 받아 재단 만들어 나라 위해 좋은 일 하려는 것이었는데 공직을 맡지 않은 순실이가 개입했다고? 내가 그리 시켰어. 그게 어쨌다는 거야.
누군가 내 풍선에 바람을 빼고 있는 거지. 야당 하는 사람들이야. 아빠가 고속도로 만들 때도 반대했던 사람들. 불평불만 분자들. 북한 공산당하고 내통해서 결국 북한 놈들이 핵폭탄 개발하고 미사일 발사하게 한 종북 빨갱이들.
2016년 12월 9일(제목:기구한 운명)
오늘은 국회가 3분의 2를 훨씬 넘는 찬성으로 나에 대한 탄핵 소추를 의결한 날. 믿었던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까지도 탄핵에 가세하다니. 배신자들! 참 나쁜 사람들!
돌아보니 정치에 입문한 지 벌써 18년이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정치판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의 은둔생활도 18년이었고. 아버지의 재임기간도 18년이었으니. 18년! 우연도 이런 기막힌 우연이 있을까. 운명도 이런 기구한 운명이 있을까. 최고의 장사꾼이었던 진시황의 생부 여불위는 “세상에서 가장 큰 장사는 권력을 얻는 것”이라 했다는데. 내 어떻게 해서 얻은 권력인데…. 이대로 물러나야 하는 것인가. 흑흑.
2016년 12월 15일(제목:큰일 났네)
“걔는 쓸데없는 얘기 뭐 하러 해. 그 폰은, 그거 냈대요? 큰일 났네.” 순실아. 네 말처럼 정말 큰일 났구나. 꽃 같은 아이들이 배 안에 갇혀 살려 달라 아우성치던 그때. 솔직히 말하면 모두 구명조끼까지 입었다는데 그렇게 큰 참사로 이어질지 내 어떻게 알았겠어?
내 관심사는 그게 아니었지. 주사 자국이나 멍 자국 들키면 안 되는데, 큰일 났네. 90분은 해야 할 올림머리 20분 만에 날림으로 해서 흘러내릴 텐데, 큰일 났네. 쟤들 어미 애비들이 시체 장사하려 들 텐데, 큰일 났네. 촛불 들고 몰려 와 집 나가라고 아우성칠 텐데, 큰일 났네. 우리 아빠 동상에 빨간 글씨 새길 텐데, 큰일 났네. 민족중흥의 위대한 역사가 뒤집어질 텐데, 큰일 났네.
2017년 3월 10일(제목:피눈물)
피눈물이 난다. 탄핵이라니. 국민이 뽑아 준 대통령인 내가 탄핵을 당하다니.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라 해도 나의 피눈물을 이해하긴 어려울 거야. 일찍이 부모를 잃고 국가와 결혼한 내가 이제 사랑하는 나라를 남겨두고 강제 이혼을 당하게 됐으니.
엮였어. 완전히 엮인 거야. 순실이 말이 맞았어. 이건 민주주의 헌재가 아니야. 야당에서 추천한 빨갱이 특검 검사들은 그렇다 치고 헌재 재판관들까지 빨간 물이 들었을 줄이야.
이제 와 생각하니 국면 전환용 돌파구는 ‘개헌’이 아니라 ‘계엄’이었어. 지금 내 나이도 어느덧 망칠(望七: 일흔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예순한 살을 이르는 말)을 넘어선 지 오래. 가는귀를 먹은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사람 말을 잘못 알아들을 때도 있어. 그래, 하필이면 그때 순실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까.
내게 전화를 건 순실이는 모든 걸 덮으려면 ‘계엄’이 필요하다고 분명 말했을 거야. 한데 내가 ‘개헌’으로 잘못 알아들었던 거지. 땅을 치고 싶어. 돌아가신 아빠처럼 그때 계엄령을 선포했더라면 다음날 태블릿피시 하나 나왔다고 해서 저들이 뭘 어떻게 했겠어. 모두들 그저 쥐 죽은 듯이 꼬리를 내렸겠지.
나는 왜 아빠처럼 따라하지 못했을까. 어려울 때마다 계엄령으로 위기를 돌파했던 아버지. 70년대 초였던가. 당시 야당 지도자를 불러다 놓고 아빠가 했다는 말이 생각나네.
“여보 유진산 선생. 이승만 박사는 학생 200명이 죽으니 겁이 나서 대통령을 물러났지만 나는 학생 2만 명이 죽더라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요.” 나도 사촌형부가 이미 말했던 것처럼 ‘5000만 국민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해도 결코 물러나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은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게 되다니. 아버지!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가 더욱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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