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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당신의 ‘아파트’는 안녕한가요?

2017. 03.15. 00:00:00

런던 템스강 사우스뱅크에 위치한 코인스트리트는 아파트단지와 같은 곳이다. 3층 높이의 건물 5개동에 150여 가구가 거주하는 아담한 동네다. 그런데 별 볼 것 없는(?) 회색빛 주택단지를 둘러 보기 위해 매년 수만 여 만명이 찾는다. 3년 전 기자가 취재한 날에도 관광객들이 많아 놀랐던 기억이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쾌적한 풍경이 먼저 시선을 끈다. 붉은 색 벽돌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 안으로 발길을 옮기자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정원이 방문객을 맞는다. 경사지붕을 씌운 도시적 느낌과 광장을 향해 발코니를 낸 교외풍의 분위기가 고즈넉하다. 아파트 특유의 삭막감이 느껴지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불과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코인스트리트는 버려진 슬럼가였다. 선박수송에 유리한 강을 끼고 있어 한때 유동인구가 10만 여 명에 달했지만 대기오염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철거위기에 직면했다.
맨 처음 버려진 코인스트리트에 눈독을 들인 사람은 부동산 개발업자들이었다. 강 건너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런던시청, 타워 브리지 등 관광명소와 연계하면 비즈니스 지구로 성장할 잠재력이 컸기 때문이다.
이런 업자들의 계획이 알려지면서 코인스트리트 주민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대규모 개발로 진행될 경우 삶의 터전을 하루 아침에 잃는 데다 수십여년 동안 이 곳에서 생활했던 자신과 아이들의 소중한 추억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다행히 런던시의 지원을 이끌어낸 주민들 덕분에 코인스트리트는 지금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게 됐다. 재개발로 인한 이익 보다 도시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더 중요하게 인식한 결과였다.
3년 전 취재일화를 떠올린 건 최근 ‘이십세기 집합주택-근대공동주거 백년의 역사’와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4호’를 접하게 되면서다. ‘이십세기…’는 근대라는 새 시대를 맞아 우리의 삶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했고, 주거는 또 어떻게 바뀌게 됐는가를 밀도있게 조명한 책이다.
“우리나라 첫 고층 아파트인 여의도 시범 아파트는 재건축됐지만 1920∼1930년대 지어진 베를린의 서민아파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는 건축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 차이다.” 20년 만 지나면 돈이 된다는 생각에 무엇이 좋은 지도 모른 채 재건축에 매달리는 국내 현실을 꼬집은 대목이다.
최근에 발간된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Littor) 4호의 주제는 ‘부동산크리피’. 괴팍한 또는 기이한 이라는 뜻의 단어 ‘크리피’(creepy)라는 제목처럼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부동산 세계를 다룬 9개 글이 수록돼 있다. 그중에서도 시선을 끈 건 ‘아파트키드’였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요즘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파트가 소중한 고향인데도 어른들이 시세차익을 이유로 30년이 지나면 미련없이 재건축한다는 줄거리다.
과연 언제쯤이면 우리도 아파트시세 보다 ‘집’에 얽힌 추억들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우리의 아파트들이 시간과 역사를 품은 문화유산으로 남게 될까. 오늘 아침 출근길, 여기저기 재개발 안내 현수막이 내걸린 낡은 아파트들이 유난히 을씨년스럽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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