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천 광주학생해양수련원장]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2017년 03월 08일(수) 00:00 가가
부모의 지나친 관심 때문에 힘들어 하다 자습시간에 틈만 있으면 복도에 나와 창밖만 쳐다보는 아이가 있었다. 며칠간 나는 그 아이가 궁금하여 멀리서 그쪽을 보았다. 그 아이는 여전히 거기에 서 있다. 이번에는 복도 도는 것을 멈추고 아이 옆에 섰다.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교감선생님 저하고 이야기해도 돼요?” “응” “아무 얘기나 해도 돼요?”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아이는 부모님이나 친구, 선생님 그 누구와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입을 떼기 어려운 듯 망설임이 반복됐으나 한 시간쯤 지나자 무슨 말인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말이 빨라졌다.
여러 이야기 중 가장 힘주어 한 이야기는 음악가를 꿈꾼다는 것이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기타를 다룰 줄 알며 작곡도 해보았단다. 그런데 그럴듯한 상을 타지 못하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한 엄마는 공부를 강조하더니 고등학교 때는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예 생각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직 제 음악을 심사위원들이 몰라줄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제가 간절히 원하는데 아빠 엄마는 더 이상 말을 못하게 해요. 나중에 취미로나 하라면서….”
“선생님과도 상의했는데, ‘서울대 나온 가수가 멋있더라’ 하시며 대학 가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면서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으셨어요.” “친구들에게도 말해봤지만 용기를 북돋워 주는 아이는 없었어요.” 그 아이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그 후로 한 번도 진실하게 꿈을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정말 허황된 꿈이나 꾼다고 할 것 같아 적당히 이야기하곤 했어요. 실은 어디까지가 제 마음인지 알 수도 없고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을 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내일도 이야기 할까”라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다음 날은 내 옆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 끓이는 솜씨가 형편없는데도 그 아이는 맛있다며 후후 불며 거푸 세 잔을 마신다.
“부모님은 이혼하셨어요. 지금은 엄마와 사는데 엄마 혼자 제 뒷받침을 하시기는 힘들죠. 아빠도 가끔 만나는데 공부나 열심히 했으면 하세요. 사실 저도 음악으로 성공하리라 확신은 못해요.” 부모님의 이혼 후 꿈같은 것은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고3이 되니 새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답하다는 것이다.
결국 공부를 하면서 음악에 대한 꿈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엄마 아빠도 자신이 잘하면 재결합은 못해도 훨씬 편해질 거란다. 이미 스스로 결론을 알고 방향도 정한 듯했다. 어떤 순간에는 마치 자기 일이 아닌 듯 자기를 “참 안된 애”라고도 하고 “엄마만 불쌍하다”면서 눈시울을 붉히더니 마침내 울어버렸다. 이렇게 엄마를 잘 이해하고 이야기도 잘하는 아이가 작년부터 엄마와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처음에는 눈물만 흘리다가 점점 소리가 커지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낀다. ‘아, 많이도 참았구나. 얼마나 큰 아픔이 저 어깨 밑에 감추어져 있단 말이냐.’ 나도 가슴이 저려온다.
우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며 그치기를 기다린다. 한참 후 눈물 어린 내 눈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가려는 아이에게 나는 악수하며 “믿는다. 항상 건강해라” 했을 뿐이었다. 그 후 아이는 창문 앞에 서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하나 둘 나를 찾아왔다. 바쁜 일을 제쳐놓고라도 시간을 내서 아이들의 말을 들었다. 한꺼번에 7∼8명의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엔 비슷비슷하던 이야기가 그 아이가 그동안 어떻게 대응해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바뀌기도 한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반응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한 아이는 “그냥 들어만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다. 보통 부모나 교사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몇 분 듣지도 않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버린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바로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격려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힘을 북돋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는 것이 더 편했나 보다. 한참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들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고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오히려 아이들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결론은 대개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것이지, 학업을 중단하고 세계를 향해 모험을 하겠다든가, 내일 하루 결석하고 무등산에 올라 가슴을 툭 틔우고 오겠다는 아이는 없다.
여러 이야기 중 가장 힘주어 한 이야기는 음악가를 꿈꾼다는 것이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기타를 다룰 줄 알며 작곡도 해보았단다. 그런데 그럴듯한 상을 타지 못하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한 엄마는 공부를 강조하더니 고등학교 때는 음악가가 되는 것은 아예 생각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직 제 음악을 심사위원들이 몰라줄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제가 간절히 원하는데 아빠 엄마는 더 이상 말을 못하게 해요. 나중에 취미로나 하라면서….”
“그 후로 한 번도 진실하게 꿈을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정말 허황된 꿈이나 꾼다고 할 것 같아 적당히 이야기하곤 했어요. 실은 어디까지가 제 마음인지 알 수도 없고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을 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내일도 이야기 할까”라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부모님은 이혼하셨어요. 지금은 엄마와 사는데 엄마 혼자 제 뒷받침을 하시기는 힘들죠. 아빠도 가끔 만나는데 공부나 열심히 했으면 하세요. 사실 저도 음악으로 성공하리라 확신은 못해요.” 부모님의 이혼 후 꿈같은 것은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고3이 되니 새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답하다는 것이다.
결국 공부를 하면서 음악에 대한 꿈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엄마 아빠도 자신이 잘하면 재결합은 못해도 훨씬 편해질 거란다. 이미 스스로 결론을 알고 방향도 정한 듯했다. 어떤 순간에는 마치 자기 일이 아닌 듯 자기를 “참 안된 애”라고도 하고 “엄마만 불쌍하다”면서 눈시울을 붉히더니 마침내 울어버렸다. 이렇게 엄마를 잘 이해하고 이야기도 잘하는 아이가 작년부터 엄마와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처음에는 눈물만 흘리다가 점점 소리가 커지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낀다. ‘아, 많이도 참았구나. 얼마나 큰 아픔이 저 어깨 밑에 감추어져 있단 말이냐.’ 나도 가슴이 저려온다.
우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며 그치기를 기다린다. 한참 후 눈물 어린 내 눈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가려는 아이에게 나는 악수하며 “믿는다. 항상 건강해라” 했을 뿐이었다. 그 후 아이는 창문 앞에 서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하나 둘 나를 찾아왔다. 바쁜 일을 제쳐놓고라도 시간을 내서 아이들의 말을 들었다. 한꺼번에 7∼8명의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처음엔 비슷비슷하던 이야기가 그 아이가 그동안 어떻게 대응해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바뀌기도 한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반응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한 아이는 “그냥 들어만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다. 보통 부모나 교사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몇 분 듣지도 않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버린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바로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격려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힘을 북돋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는 것이 더 편했나 보다. 한참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들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고 무엇을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오히려 아이들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결론은 대개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것이지, 학업을 중단하고 세계를 향해 모험을 하겠다든가, 내일 하루 결석하고 무등산에 올라 가슴을 툭 틔우고 오겠다는 아이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