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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쌈짓돈의 기적’을 믿어요

2017. 03.08. 00:00:00

요즘 충무로에서 ‘잘나가는’ 조정래(45)영화감독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중앙대 영화학과 출신이지만 한때 촬영장보다는 판소리 무대에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지난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보고 고수(鼓手)의 길로 들어선 게 계기가 됐다. 무형문화재 판소리(춘향가) 예능 보유자 고 성우향 명창과 무형문화재 고법 보유자인 정철호 선생이 그의 스승이다.
지난 2002년 조 감독은 평소처럼 판소리 봉사를 위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나눔의 집’(경기도 광주)을 찾았다. 하지만 이 곳에서 생활하는 강일출 할머니가 심리치료중에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서울로 돌아온 조 감독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비극을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큰손’들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위안부를 소재로 한 그의 시나리오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그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주변의 지인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을 건네 간신히 촬영에 들어갔지만 금방 돈이 바닥나 중단해야만 했다.
조 감독의 애를 태우던 제작비는 뜻밖의 ‘스폰서’를 만나 해결됐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대중의 소액기부로 기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시도했는데 국내외에서 7만5000여명이 후원금을 보낸 것이다. 크라우드펀딩으로 12억 원을 모금한 조 감독은 지난 2015년 촬영을 재개했고 마침내 지난해 2월 개봉하게 됐다. 장장 14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이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은 ‘귀향’. 비록 제작기간은 오래 걸렸지만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지역에서 크라우드펀딩의 힘을 처음 보여준 건 5월항쟁을 다룬 영화 ‘26년’이다. 지난 2012년 유명웹툰작가 강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크랭크 인을 앞두고 투자사들이 투자를 철회하는 바람에 무산될 위기에 있다가 크라우드펀딩으로 살아나 295만 여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근래 문화예술계의 크라우드펀딩 바람이 거세다. 한정된 공적 지원금과 지원기관의 입맛에 따라 지원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문화를 살리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영화와 미술, 음악 등 장르 구분없이 비상업적이거나 사회적 메시지가 강해 기획 조차 하기 힘든 작품들의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근 2차 크라우드(스토리)펀딩에 들어간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도 그런 경우다. 5월 항쟁을 배경으로 제작중인 영화는 ‘정치색이 짙다’는 이유로 투자자를 찾지 못해 ‘접을 뻔’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1차 크라우드펀딩을 벌여 6900여 만 원을 모금했다.
그럼에도, 총 제작비 60억 원을 달성하기에는 부족해 당초 목표인 오는 5월 스크린에 걸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임을 위한 …’이 ‘귀향’ ‘26년’의 뒤를 잇는 ‘쌈짓돈’ 기적의 주인공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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