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곡도서관에 오시는 91세 할머니가 계신다. 말을 건네보니 소싯적 꿈이었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도서관을 찾으신단다. 일주에 두세 번 어린이 자료실을 찾아 동화책을 읽고 그 감상을 시로 짓고 그림으로 그리신다니 뭔가 충격이었다. 할머니에게 도서관은 책과 만나고, 자신의 삶을 회고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도서관 어린이실에 가면 유모차를 끌고, 손자·손녀 손잡고 동화책을 읽으러 오시는 어르신이 하루에도 십여분이다. 도서관 종합자료실 역시 잡지나 신문을 보고 책을 읽는 어르신들로 항상 가득하다. 학습실 또한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개인학습에 열중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도서관 시설 개선을 건의하시는 대부분이 어르신이다. 그만큼 도서관은 이제 어르신들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청소년 인구 감소로 요즘 학교와 도서관의 위기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우리 도서관도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여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인구의 20%를 넘을 것이라 한다. 도서관이 지역사회의 사랑방이자 커뮤니티·평생학습 공간으로서 고령화 시대 어르신들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지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도서관이 어르신 이용자를 포용하여 여생을 행복한 시간으로 보내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적극 개발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지금도 그러한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부터라도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적극적인 도서관의 대응이 필요한 것이다.

북구 일곡·운암도서관은 종합자료실 내 실버존, 디지털자료실 내 어르신 전용석을 마련하고 있다. 어르신 대상 추천도서도 매월 선정하여 비치하고 있으며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어르신들을 위해 큰 글씨 도서를 300여 권 보유하고 확대경과 돋보기도 비치했다.

평생학습 일환인 성인 문화프로그램 16개 강좌와 성인 동아리 27개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도전 한글교실이나 명심보감, 일곡시회, 실버독서회는 어르신들로 강의실 자리가 부족할 정도다. 특히 실버독서회 어르신들은 어린이에게 영어책 읽어주기, 구연동화로 자원 봉사를 하고 계신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특별극까지 선보여 주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은퇴한 어르신들이 끊임없이 배우고, 배움을 나누며 소통하는 순환적 학습으로 세대 교류는 물론, 자신의 노년을 가치있고 보람있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 선진지인 일본에서는 도서관 자체적으로 노인 대상 ‘치매예방과 치료’ 관련 내용으로 활발한 연구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과 호주 등에서는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직원들을 교육하고 도서관 운영계획에 반영하는 등 체계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대응하고 있다.

우리도 앞으로 노인 인구에 대한 최신 데이터를 수집하여 도서관 계획 수립 및 예산에 반영하여 안전하고 편안한 시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어르신 친화형 도서관’으로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지역 내의 노인시설, 양로원 등의 단체 혹은 시설과 연계하여 도서 대출을 확대하고, 찾아가 책 읽어주기나 북 토크 등 출장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며칠 후면 앞서 언급한 91세 어르신의 소박한 그림 전시가 일곡도서관에서 열린다. 그동안 그토록 하고 싶었던 책 읽고 그림 그리는 것으로 여생을 마무리 하고 싶었다는 그 분. 도서관에 다니시며 그리신 그림을 손때 묻은 스케치북 그대로 30여권을 전시할 예정이다. 도서관 근무자와 이용자들 마음에 뭔가 잔잔한 울림이 되는 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제, 도서관이 새롭게 가져야할 가치는 사회에서 은퇴한 어르신들이 지난 인생을 정리하고 또 다른 인생을 설계하고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