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없이는 못살아 나 혼자서는 못살아 헤어져서는 못살아 떠나가면 못살아” 패티김의 노래 ‘그대 없이는 못살아’ 의 노랫말이다. 젊은이들에게는 사랑의 노랫말이지만 노부부들에게는 그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죽을 때까지 내 곁에서 나를 부양해 달라고 하는 구속의 노랫말이 될 수 있다.

자녀들을 출가시킨 뒤 노후에 가정과 배우자의 구속에서 벗어나 홀로 서기를 실행하고자 하는 황혼이혼의 비율이 해마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2009년 총 이혼 건수의 22.8%이던 것이 2014년에는 28.7%로 매년 1% 이상 늘어나고 있고 건수로 보면 3만 2000건이나 된다. 황혼이혼에 공감한다는 노인들이 70.4%나 되어 우리나라 황혼이혼이 위험수위에 육박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황혼이혼을 예방하고 부부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졸혼이다. 졸혼이라는 말은 결혼을 졸업하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부부가 법적 혼인관계를 유지하지만 각자 떨어져 살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을 꾸려 가는 삶을 의미한다.

졸혼은 일본 여류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 출판한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비롯되어 일본 결혼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요즈음에 와서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황혼이혼은 법정 다툼 끝에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지만 졸혼은 결혼 상태는 유지하면서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졸혼에 대한 찬성이 57%, 반대가 40%로 나타났고 여성의 찬성 비율이 더 높아서 여성의 53%가 찬성인데 비해 남성은 32%만 찬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노년의 여성들은 수십년간 남편과 시집에 얽매였던 결혼 생활이 지겨워지고 속박에서 벗어나고파 졸혼을 찬성한다고 한다.

탤런트 백일섭(73)은 얼마 전 졸혼을 선언하고 여수에 가서 취미인 낚시와 혼밥 혼술을 즐기며 홀로 살고 있다. 엄앵란(81)·신성일 부부는 오래 전부터 서울과 대구에 떨어져 살면서도 돈독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졸혼생활을 하고 있다. 전원주택의 낭만을 선호하는 남편과 도시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부인이 떨어져 사는 경우도 역시 졸혼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졸혼에 이어 요즈음 휴혼이란 말이 새롭게 등장했다. 졸혼이 결혼 졸업이라면 휴혼은 결혼 휴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기간 동안 가족 부양을 하느라고 힘들게 살아 왔던 사람이 일정기간 휴식기간을 갖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사생활을 즐기자는 것이다.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에서 김혜자는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업을 선언하고 집을 떠나기도 했는데 휴혼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대학교수들은 6개월 내지 1년간의 안식년을 갖는데 이 기간 동안 하고 싶은 연구도 하고 견문도 넓히고 재충전하고 돌아와 교수생활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결혼생활에도 휴식 기간을 갖게 되면 개인 생활을 누리고 돌아와 새로운 기분으로 결혼생활에 임할 수 있게 된다. 이 휴혼은 노부부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의 부부에게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시집과의 불화로 이혼하려는 젊은 부인들이 일정 기간 동안 가사노동과 시부모 봉양의 의무를 내려 놓고 자기만의 시간과 생활을 갖게 된다면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와 재결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젊은 날의 이혼율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휴혼 후에 돌아 오면 가정과 시집에 더욱 충실한 며느리가 될 것이다.

휴혼을 공약으로 내걸 대선 후보자가 있다면 모든 여성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을 것 같다. 휴혼을 제도화해서 누구나 원하면 휴혼을 시행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마치 육아휴직을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과 정으로 노년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들이 많지만 부부간에 갈등과 대립이 날로 극심해지고 서로 간에 미움과 분노가 쌓인다면 황혼이혼이라는 불행한 결말로 치닫기 전에 졸혼이나 휴혼 등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