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丁酉年), 닭의 해라고 하는데 아직 닭울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도회지에서 살다 보니, 그럴 만한 기회가 전혀 없다. 요즘은 시골이라고 하더라도 새벽을 알리는 닭이 제대로 울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걸핏하면 조류독감이니 뭐니 해서 가뜩이나 기를 펴지 못하는 게 닭들의 신세가 아닌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더러 시골에 가서 며칠씩 머물기도 했기에 새벽 닭 우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것도 벌써 20여 년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마저 귀담아 두지 않았기에 나의 귓속에 남아 있는 새벽 닭 우는 소리는 순전히 어렸을 때 들었던 기억이다. 물론 밤에 닭이 어떤 모습으로 우는가는 볼 수가 없었다. 다만, 가끔 한낮 나른할 때쯤이면 몸을 고추 세우고, 목은 45도쯤 뒤로 젖힌 채 하늘을 응시하며 장엄한 목소리를 뽑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아마 그러한 엄숙하고 의연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그 꼿꼿한 대쪽 같은 위세를 상상해 본다면, 아무리 곤한 새벽잠에 빠졌더라도 벌떡 일어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시경(詩經)의 제(齊)나라 노래에 계명(鷄鳴)이라는 시가 있다.

“새벽닭이 울었으니, 조정에 대신들이 다 모였겠네요. 그런데, 그건 닭 울음소리가 아니고, 잠결에 들은 파리 소리였다.”

이른 새벽에 왕비가 방에 날아다니는 파리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닭울음 소리로 착각하고, 왕을 깨워 조정에 내보내려고 했다는 내용이다. 왕과 왕비가 나라 일에, 노심초사하며 잠자리마저 단락하게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그려낸 시작품이다.

‘계명’은 보통 새벽을 여는 닭울음 소리를 뜻한다. 그래서 효명(曉鳴)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이는 문화와 문명을 뜻한다. 이육사의 시, ‘광야’의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와 같은 것도 같은 의미이다. 닭울음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고 있다면, 몽매(夢寐)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통사람 한두 명이야 좀 몽매하면 어떻겠는가. 하지만 어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그러하다면 어두운 세상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시경’의 ‘계명’에 나오는 제나라 왕과 왕비는 훌륭한 지도자들이다.

나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다. 옛날에는 네댓 명의 형제라도 모두 한방을 썼다. 가옥의 구조도 그랬지만 땔감도 여유롭지 않았다. 여름에는 밤이 짧은지라 닭울음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그러나 겨울밤에는 닭울음 소리를 거의 날마다 들었던 것 같다. 특히 바깥 날씨가 추운 날은 온돌방이 금방 냉돌이 되었다. 닭 울음소리에 잠을 깬 것이 아니라, 방구들이 식어서 아랫목을 파고들다 보면 닭울음 소리가 들리곤 했다.

다시 잠들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이다 보면 가끔 “자냐?”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형이 나를 깨워보는 소리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자는 체하곤 했다. 형이 무슨 말을 할지 알기 때문이다. ‘요즘 계속해서 자기가 군불을 땠으니, 네가 나가서 군불을 좀 지피라’고 할 것이다. 밤중에 밖에 나가 찬바람을 마주한다는 것은 생각 만해도 몸이 오싹해지는 일이었고,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따뜻함을 느끼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보다 모른 체하고 방안에 누워 있다가, 형이 나가서 땐 군불에서 안온한 따뜻함을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다시 새벽잠에 빠져드는 것이 행복한 일이었다.

형은 두어 번 내 이름을 부르다가 부엌으로 나가 새벽에 자주 군불을 때주곤 했다. 그 덕에 다른 동생들도 안락한 새벽잠을 잘 수 있었다. 힘을 가지고 말한다면, 또한 사리를 가지고 따진다면 어떻게 형을 이기겠는가. 형은 사리나 논리를 떠나 어른노릇을 했다. 그래서 논리와 논쟁을 넘어선 아름다운 문화를 열어놓은 것이다.

계관(鷄冠)이라고 하는 닭의 볏은 ‘벼슬’을 뜻하고, 날카로운 발톱은 ‘용맹’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닭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계명’에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새벽을 알려주는 신의(信義), 어둠을 물리치고 밝은 세상을 열어가는 문명(文明)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