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의 필수자재가 되고 있는 레미콘의 산업기반이 중대위기를 맞고 있다. 수요자의 절대 권력이 부추기는 부당한 출혈 경쟁과 공장난립으로 거래가격이 1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70% 이상의 공장 주인이 바뀌는 지경이 됐다. 공장이 영세하기 때문이다.

레미콘은 단순 산업으로서 재고 없는 상품이라는 특성과 주문 산품이라는 용이성이 결합된 계절산업이다. 고가의 장치산업이라는 취약성도 있다. 그럼에도, 2015년 기준으로 보면 전국적으로 1000 여개, 광주전남 지역에서도 110여개 공장이 난립해 전국 최저치인 21%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레미콘 업계는 산업 고도화 정책에 따른 일시적 호황이 부른 유망 업종이라 불리면서 대책 없이 공장들만 늘어나 산업 전반이 동반 침체하고 있다. 더불어 건설현장 대형화와 콘크리트 타설 장비의 획기적인 발달로 인하여 일시에 대량을 생산, 공급할 수 있는 시설 장비 인원을 기본적으로 확보해야 할 필요조건과 공장의 대형화가 경쟁력이 되는 불가피한 현실까지 겹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다출혈 경쟁을 피할 수 없다. 레미콘 산업 자체의 붕괴나 몰락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공동화 현상의 전조로 봐야 한다. 당연히 대책이 필요하다.

미국은 19세기 말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산업화 시기를 맞고 있었다. 특히 경제적 배분 문제에 있어서 무정책으로 일관해 왔던 정부가 이제는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었다. 42세의 젊은 나이로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루즈벨트는 이른바 ‘공정한 대우’(Square Deal)라는 신경제 정책을 내세웠다. 그의 취임사에는 독점규제, 중소기업 보호, 사회적 약자의 권익신장 등을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곤경에 처한 중소기업 경영인들을 비롯하여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공정한 대우와 분배를 외쳤던 그의 정책은 크게 공감을 얻었다.

‘공정한 대우’는 기업 활동과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개입의 새로운 가이드 라인이 됐다. 정부가 경제활동 자유와 효율성 못지않게 분배의 정의를 중요한 가치로 추구해야 한다는 미국 자본주의의 진보적 이상을 대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곧 미국식 수정 자본주의의 이념적 토대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남겼다.

우리나라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정부 초기에 사회·행정·경제적 강자의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공정사회를 구현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중소기업 손톱 밑 가시 뽑기’,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위원회’ 등 경제적 약자와 중소기업의 애로 해결, 그리고 우월적 지위가 남용되는 갑질의 횡포를 근절코자하는 정책에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책 추진의 연속성과 의지 부족으로 인하여 실망과 아쉬움만 남겼다.

우리 레미콘 산업이 영세성의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수요의 건전성과 공정한 분배 시스템의 결여 때문이다.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경제적 강자 앞에 시장경제 논리는 부조화를 개선할 대책이 될 수 없다. 이제 정부기관의 조정과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즉, 레미콘 산업의 공정분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웃 일본과 독일처럼 레미콘조합이 공동 판매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한다고 생각한다.

레미콘 판매 원가에서 물류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대에 육박하고 있다. 전문기관에서 발표한 ‘레미콘 산업의 경영 합리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공동판매로 얻어지는 근거리 조정 판매로 레미콘 운반트럭을 4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소비자 유통 가격 대비 7%까지 절감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즉,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큰 혜택을 볼 수 있고 산업 합리화를 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미콘 시장의 불합리한 질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수요의 건전성이 유지되는 한편 정부기관의 개입, 그리고 공정한 분배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이같은 방안은 위기에 처한 레미콘 산업의 대안이 될 것이다. 레미콘 업계도 투철한 사회적 사명감을 갖고 품질로 보답하겠다는 건전한 기업가 정신과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