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은 여성혐오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 급부상한 해였다. 그동안 여성혐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혐오 논란은 긴 역사를 갖고 있지만 비교적 최근의 사건으로는 군가산점제로부터 촉발되었다. 군가산점제는 1999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내린 이후 폐지되었다. 이후 군가산점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젠더 이슈가 되었다. 군가산점제 논란이 여성에게도 군복무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공격적인 논리로 확산된 데에는 인터넷 사용 활성화가 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의 활성화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자유주의시대는 ‘유연성’이라는 단어로 사회를 재편한다. 이 말은 ‘경쟁’이라는 단어로 환치 가능하다. 경쟁으로 환치된 신자유주의 시대 특징은 느림, 장기(Long Term)보다 신속한, 빠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민주주의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상호 헌신, 성실한 관계와 같은 장기(Long Term)적인 가치가 중요한 사회이다. 그러므로 ‘유연성’, ‘경쟁’이 목표인 사회에서 장기적인 것은 변화의 걸림돌이 된다. 급변하는 사회, 경쟁주의로 내몰린 남성들은 국제적, 국내적 정세변화보다 여성을 경쟁상대로 지정하고 혐오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빠르기 때문이다.

정의롭고 공정한 민주사회를 지향하는데 있어 가장 위험한 두 가지 도덕적 감정은 혐오감(disgust)과 수치심(shame)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 감정은 인간 육체의 결함, 나약함, 의존성을 우선적인 대상으로 삼는다. 즉, 혐오감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혐오감이 만연한 사회는 민주적인 사회가 아니다.

그렇다면, 타인을 어떻게 인간으로 존중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생기는가. 그것은 타인의 입장에 자신을 놓는 것이다. 여성을 혐오하기 전에 여성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남녀 임금격차를 발표한 2000년부터 부동의 1위를 지켜오고 있는 나라의 여성, 남성보다 36.7% 적게 받는 여성,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29개 조사국 중에서 29위를 차지한 나라의 여성이 우리나라 여성이다. 또 세계경제포럼의 성차별지수는 145개국 중 115위를 차지한 나라의 여성, 교육수준은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노동시장의 지위는 최하위인 나라의 여성. 그 여성이 우리의 어머니이고, 우리의 아내이며, 우리의 누이인 것이다. 우리는 그런 여성들을 경쟁상대로 삼아 혐오하고 비하하고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는 갈등과 변화를 앞둔 한국의 민주주의가 시험대위에 놓여있다. 여성혐오, 젠더 갈등,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파장 등 보편적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시험대는 날카롭고 엄중하다. 그 엄중함을 지혜롭게 넘기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소통이다.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으로, 경청으로, 여성혐오와 경쟁으로 점철된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엉뚱한 해석이 될지 모르겠지만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끈다”고 했다. 물론, 여성주의적 관점의 ‘여성적인 것’이 아닌 줄 안다. 하지만, 여성적인 것의 상징인 부드러움은 젠더 갈등을 해소하고 변화를 앞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힘이다. 우리 사회가 포용적이고 공정한 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