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2017 신년사] 언 손으로 촛불 들던 이들의 세상이 오기를
2017년 01월 02일(월) 00:00 가가
정유년(丁酉年) 희망찬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늘 그러했듯이 올해도 가벼운 설렘과 벅찬 기대로 새해를 맞고 싶습니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분노보다는 평온이 우리 맘속에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올해 2017년은 윤동주 시인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새해 아침,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아갈 길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어둠 속에서 언젠가 홀연히 닥칠 ‘아침’을 기다리던 시인처럼, 우리 또한 새벽닭 홰쳐 우는 소리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시인이 살았던 그 시대나 지금의 이 시대나, 기나긴 터널처럼 어둡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암흑의 시대에 별을 노래했던 윤동주는 부끄러움을 아는 시인이었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시인을 떠올리고 또한 더욱 그리워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까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 돌아보면 저들은 저들의 사전에 ‘부끄러움’이란 단어를 아예 삭제해 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되는, 저 국정 농단 세력들 말입니다. 저들은 세상을 그토록 놀라게 하고도 내 탓이라 눈곱만큼의 반성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찍이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간직하고 따르면 성현(聖賢)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지만, 반대로 그 마음을 잃고 따르지 않으면 금수(禽獸) 같은 존재가 된다”고 했습니다. 부끄러움을 잃고 ‘짐승’이 되어 버린 저들 앞에서 우리는 치를 떨며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언제까지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어야 할까요?
지난해는 참담했습니다. 저들의 농간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두어 달 전이지만 참으로 긴 세월이 흐른 양 느껴집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지만 어쩌다 이런 무능한 대통령에게 속게 됐는지 한탄스럽습니다.
“나라는 위태로운데 사당의 깃발만 나부끼고/ 임금은 허수아비와 같네.”(國危私黨偏/ 君弱偶人同)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남긴 말입니다. 고려 말의 상황인데도 마치 오늘의 현실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낱 아줌마에게 국정이 통째로 휘둘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분노했습니다. 천만을 넘는 국민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유모차를 끄는 주부도 넥타이를 맨 회사원도, 좌파도 우파도, 너도나도 모두 광화문으로 금남로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 결과, 온통 무능으로 범벅된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습니다. 위대한 촛불의 힘입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촛불 혁명’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해마다 연말이면 발표하는, 교수들이 직접 뽑은 2016년의 사자성어에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선정된 것은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며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載舟覆舟)는 뜻입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촛불 민심이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또 대통령 탄핵까지 가결된 현 시국을 빗댄 것이지요.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해마다 선정된 ‘올해의 사자성어’를 찾아봤습니다. 당선되던 해인 2012년 제구포신(除舊布新: 낡은 것을 지우고 새로운 시책을 펼친다)을 제외하곤 모두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2013년 도행역시(到行逆施: 거꾸로 행하여 도리에 어긋남),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권력자에게 아첨하여 권세를 휘두름). 그리고 2015년엔 혼용무도(昏庸無道: 군주가 어리석고 무능해 나라 상황이 갈피를 못 잡는 형국)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거론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대통령을 비롯한 저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새해 들어서도 여전히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우리는, 오로지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 회복 의지 외에는 하는 일 없이 미용에만 신경을 썼던 박근혜의 배를, 지금 흔들고 또 가라앉히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배가 기울고 있음을 지켜보면서도, 그때 세월호 침몰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흘렸던 ‘피눈물’의 의미를 아직 모르는 것만 같습니다.
그나저나 어쩌겠습니까.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지만 그래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겠지요. 올해는 조기 대선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그 어느 해보다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까요? 현재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야권 인사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믿음을 주는 ‘잠룡’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눈을 부릅뜨고 진정 국민을 위해 일할 사람이 누구인지 살피고 살펴야겠습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개헌론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국정 농단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 운영의 틀인 헌법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4년 중임 대통령제와 이원집정부제·의원내각제 등으로 엇갈려 서로 치고받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 뻔합니다.
개헌을 꼭 해야만 한다면 권력의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정치권의 이해득실 계산은 배제해야 합니다. 이번만큼은 나라의 틀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시인 윤동주가 기다렸던 찬란한 아침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새해는 언 손으로 밤늦도록 촛불을 잡던 이들의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새해는 국격을 되찾아 반듯한 나라를 세우기 위한 초석을 다져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적 소명이고 상처 입은 국민의 소망일 것입니다.
“해가 뜨면 일하고(日出而作), 해가 지면 쉬고(日入而息), 우물 파서 마시고(鑿井而飮), 밭을 갈아 먹으니(耕田而食), 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帝力于我何有哉)” 새해엔 우리 모두 요순시대의 격양가(擊壤歌)를 다 같이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광주일보가 창사 65주년을 맞는 특별한 해이기도 합니다. 광주일보는 늘 그랬던 것처럼 올 한 해도 호남의 정당한 목소리를 전달하고, 지역민의 삶을 풍족하게 하며,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는 고장 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힘쓸 것입니다. 새해 벽두(劈頭), 다시 한 번 애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올해 2017년은 윤동주 시인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새해 아침,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암흑의 시대에 별을 노래했던 윤동주는 부끄러움을 아는 시인이었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시인을 떠올리고 또한 더욱 그리워하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부끄러움을 잊어버린 까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 돌아보면 저들은 저들의 사전에 ‘부끄러움’이란 단어를 아예 삭제해 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되는, 저 국정 농단 세력들 말입니다. 저들은 세상을 그토록 놀라게 하고도 내 탓이라 눈곱만큼의 반성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라는 위태로운데 사당의 깃발만 나부끼고/ 임금은 허수아비와 같네.”(國危私黨偏/ 君弱偶人同)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남긴 말입니다. 고려 말의 상황인데도 마치 오늘의 현실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낱 아줌마에게 국정이 통째로 휘둘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분노했습니다. 천만을 넘는 국민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유모차를 끄는 주부도 넥타이를 맨 회사원도, 좌파도 우파도, 너도나도 모두 광화문으로 금남로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 결과, 온통 무능으로 범벅된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습니다. 위대한 촛불의 힘입니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세계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촛불 혁명’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해마다 연말이면 발표하는, 교수들이 직접 뽑은 2016년의 사자성어에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선정된 것은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며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載舟覆舟)는 뜻입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촛불 민심이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또 대통령 탄핵까지 가결된 현 시국을 빗댄 것이지요.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해마다 선정된 ‘올해의 사자성어’를 찾아봤습니다. 당선되던 해인 2012년 제구포신(除舊布新: 낡은 것을 지우고 새로운 시책을 펼친다)을 제외하곤 모두 우울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2013년 도행역시(到行逆施: 거꾸로 행하여 도리에 어긋남),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권력자에게 아첨하여 권세를 휘두름). 그리고 2015년엔 혼용무도(昏庸無道: 군주가 어리석고 무능해 나라 상황이 갈피를 못 잡는 형국)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거론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대통령을 비롯한 저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새해 들어서도 여전히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우리는, 오로지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 회복 의지 외에는 하는 일 없이 미용에만 신경을 썼던 박근혜의 배를, 지금 흔들고 또 가라앉히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배가 기울고 있음을 지켜보면서도, 그때 세월호 침몰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흘렸던 ‘피눈물’의 의미를 아직 모르는 것만 같습니다.
그나저나 어쩌겠습니까.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지만 그래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겠지요. 올해는 조기 대선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그 어느 해보다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까요? 현재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야권 인사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믿음을 주는 ‘잠룡’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눈을 부릅뜨고 진정 국민을 위해 일할 사람이 누구인지 살피고 살펴야겠습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개헌론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국정 농단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 운영의 틀인 헌법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4년 중임 대통령제와 이원집정부제·의원내각제 등으로 엇갈려 서로 치고받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 뻔합니다.
개헌을 꼭 해야만 한다면 권력의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정치권의 이해득실 계산은 배제해야 합니다. 이번만큼은 나라의 틀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시인 윤동주가 기다렸던 찬란한 아침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새해는 언 손으로 밤늦도록 촛불을 잡던 이들의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새해는 국격을 되찾아 반듯한 나라를 세우기 위한 초석을 다져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적 소명이고 상처 입은 국민의 소망일 것입니다.
“해가 뜨면 일하고(日出而作), 해가 지면 쉬고(日入而息), 우물 파서 마시고(鑿井而飮), 밭을 갈아 먹으니(耕田而食), 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帝力于我何有哉)” 새해엔 우리 모두 요순시대의 격양가(擊壤歌)를 다 같이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광주일보가 창사 65주년을 맞는 특별한 해이기도 합니다. 광주일보는 늘 그랬던 것처럼 올 한 해도 호남의 정당한 목소리를 전달하고, 지역민의 삶을 풍족하게 하며,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는 고장 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힘쓸 것입니다. 새해 벽두(劈頭), 다시 한 번 애독자 여러분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