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국립나주박물관은 개관 2년 10개월 만에 50만번째 입장객을 맞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제외한 전국 12개 지방박물관 가운데 가장 늦게 문을 열었지만 같은 기간 국립경주박물관을 제외하면 이렇게 많은 관람객이 찾아온 박물관이 더 있을지 모르겠다.

나주박물관에 이렇게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는 이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나주 반남고분군에 있는 거대한 고분들과 나주박물관에 전시된 독특한 옹관·금동관 등 다양한 유물들을 보고자 하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반남고분군은 1917년 겨울에 이뤄졌던 첫 발굴 조사에서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부장하고 있는 거대한 옹관들이 출토되면서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도굴이 성행하게 돼 그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비운의 고분군이 됐다. 1938년 두 번째 발굴을 위해 찾아왔던 일본인 학자마저 지난 20년간의 도굴의 참상을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고 기록했을 정도다.

반남고분군에는 왜 그렇게 거대한 고분들이 모여 있을까? 그 규모를 보면 5세기경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도읍지의 고분들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으면서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커다란 옹관들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고분들이다. 하지만, 이 지역 마지막 마한사회는 369년 백제 근초고왕에게 병합됐다는 이병도 박사의 견해를 바탕으로 백제의 간접지배 아래 제한적으로 발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통설이었다. 또한 옹관묘에 이어 5세기 후엽부터 축조되기 시작했던 석실묘는 직접지배를 위해 백제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남긴 것이라고 인식돼 왔다.

그러나 고고학적 조사·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새로운 견해가 제시되기 시작했다. 1990년 11월에 개최된 ‘제5회 전남고문화 심포지엄’에서 전남지역 초기 석실묘는 입지, 구조, 부장품 등 기존의 마한 옹관묘 세력을 그 주인공으로 봐야할 것이라는 견해가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이 견해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기존의 통설을 뒤집는 새로운 견해가 당장 수용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견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가 발굴되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일이 필요하지 않았다. 1996년 8월 나주 복암리 3호분에서 5세기말에 조성됐던 석실 안에서 4기의 옹관이 발굴된 것이다. 이 석실의 주인공들은 직접지배를 위해 백제에서 파견된 관리가 아니라 옹관을 쓰는 기존 마한 세력자임이 확인됐다. 복암리 3호분은 1998년까지 전면 발굴이 이뤄져 42기의 목관, 옹관, 석실, 석곽으로 구성된 가족묘라는 사실이 확인, 6세기초까지 마한사회가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있었음이 밝혀지게 됐다. 또 그와같은 새로운 자료를 전시하기 위해 복암리 3호분의 전시관 건립이 추진됐다. 드디어 지난 4월 30일 인근 중랑마을 앞에 아담한 전시관이 문을 열어 실물 크기로 재현된 고분을 둘러볼 수 있게 됐다. 경주 천마총은 고분 자체를 전시장으로 꾸밀 수 있었지만 복암리 3호분은 안전상 문제로 그럴 수 없었던 점이 아쉽다.

내년 반남고분군이 발굴된지 100년이 된다. 1997년 금동관이 발굴된 지 80년만에 국보 제295호로 지정됐고, 2005년에는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2013년에는 국립나주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고대문화와 관련된 핵심적인 두 국가기관이 함께 있는 곳은 경주, 부여, 나주 뿐이다. 그 자체가 전남지역 고대사회의 역사적 성격을 웅변해 주고 있을 것이지만 여전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전남지역 마한사회 문제는 1500여년 전의 일이지만 그저 지나간 역사에 그치는 게 아니다. 오늘날 이 지역과 주민, 그리고 향후 이곳에서 살게 될 후손들에게 이어질 역사다.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와 달리 독립적 사회와 독자적 문화를 이룩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양직공도’ 같은 간접적 기록이 남아있다. 특히 마한인들이 남겼던 고고학 자료는 6세기초까지 이 지역이 독자적으로 발전했음을 묵묵히 증명해주고 있다.

반남고분군 발굴 100주년을 맞는 2017년을 맞으면서 마한 역사가 더욱 자세히 밝혀지고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또한 백제문화권, 신라문화권, 가야문화권과 마찬가지로 마한문화권이 설정돼 지역 발전의 역사적 견인차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