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자체가 바빠 한동안 TV를 끊고 살았다. 그런 내가 단 한 편도 빼놓지 않고 챙겨본 드라마가 있다. 얼마 전 큰 인기를 끌며 종영한 드라마 ‘혼술남녀’다.

‘혼술남녀’ 2화에서 여주인공 박하나(박하선)는 자신의 자취방에서 엄마가 보내준 반찬을 보며 맥주 한 캔을 들이켠다. 노량진 학원가에서 열정은 많지만 서투른 게 많아 하루종일 치이는 초보강사인 그녀는 ‘노그래’(노량진 장그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날도 우여곡절을 겪고 늦은 시간 퇴근해 집에 도착했지만, 고향에서 엄마가 보내준 반찬은 이미 상해버린 뒤였다. 딸을 생각하는 마음과 정성을 담아 반찬을 보내줬지만 삶에 치이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던 그녀는 이내 감정이 복받쳐 혼자 술을 마신다. 눈물을 머금다가도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켜며 ‘화이팅’을 외치는 그녀의 모습이 애잔하기만 했다.

“내가 혼술을 하는 이유는 힘든 날 진심으로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내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아픔을 나누기보단 혼자 삭히는 것이, 이렇게 혼자 마시는 한 잔의 술이, 더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오늘도 이렇게 혼자 마신다.”

박하나가 맥주 마시는 장면에서 그녀의 독백이 흐른다. 이 장면을 본 뒤부터 나도 ‘혼술’을 즐기고 있다. 사람들이라는 틈바구니 속에서 하루종일 시달리다보면 술 한잔 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마시고 싶다.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 그리고 골치 아픈 걱정거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혼술’을 찾기도 한다. 바쁜 하루를 마치고 한잔 들이켜는 술 한잔과 혼자 있을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은 오늘도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응원이 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청춘이 살아가기엔 너무도 팍팍하다. 사회초년생 ‘노그래’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부산이 고향인 나는 대학진학을 위해 아무 연고도 없는 광주로 온 지 벌써 10년이다. 곧 서른을 앞두고 있지만 딱히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내가 생각했던 서른즈음의 나는 적어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괜히 ‘헬조선’, ‘흙수저’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대학 다니면서 받았던 학자금 대출도 당장 갚아나가기 힘든 상황에서 이리저리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다. 그러다 나름 일자리를 구했지만 자취방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내고, 대출금을 갚고나면 한 달을 먹고 버티는 것도 빠듯하기만 하다. 대출금리마저 오른다고 하니 내 집 마련의 꿈은 일찍이 포기해야할까 싶다.

“청년이 희망을 상실하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다”라는 말이 있다. 열심히 살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청년들의 소박한 희망이 바로 그 사회와 나라를 움직이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어른들이 말했던 ‘괜찮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 것은 물론, 결혼을 하고 내 집을 사고, 아이를 낳아 단란하게 사는 ‘그저 평범한 삶’이 청년들의 소박한 희망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나를 원망해야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금수저를 물려주지 못한 부모를 원망해야하는 것인가!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깊은 상실감을 줬다. 청년들에게 사죄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만큼은 차별이 없어야 한다. 죄인이 올바른 죗값을 치루는 것조차 기대하지 못할 나라라면, 대한민국은 청년이 희망을 완전히 상실한 죽은 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