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4일 전남도청 왕인실에서 개최된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했다. 학술대회에서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지리산 기독교 선교유적지의 가치가 재조명되었다. 선교사들이 지은 건물들이 자리 잡은 곳은 지리산 왕시루봉으로, 이 일대를 지리산 선교유적지로 부른다. 유적지에는 전문가들이 대표적인 근대유산으로 손꼽는 12채 건축물이 있다. 노르웨이, 미국, 호주, 영국 등 선교사들의 고향 건축양식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명실상부하게 선교유적의 국제적인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사단법인 한국선교유적연구회 주관으로 기독교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인도와 필리핀, 그리고 등재를 추진 중인 일본 전문가 등 세계유산 전문가와 근대문화 유산 연구자 및 지방자치 단체 담당자들이 참여, 그 의의를 되새겼다.

중앙 문화재위원회 이상해 위원장은 ‘세계유산의 이해와 한국의 세계유산 등재전략’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했다. 전라남도 선교유적 발표 순서에는 문화재위원인 남호연 교수의 ‘지리산선교유적의 근대문화문화재적 가치’란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지리산 선교유적지는 1895년부터 호남 지역 선교활동을 맡은 미(美)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그 당시 조선인들의 문맹을 깨우치기 위해 수많은 학교를 세웠고 병원을 세워 의료기술, 그리고 서양건축 양식 등 우리나라 근대화 발전을 이루는데 큰 공헌을 남긴 개화기 유산으로 문화재 등록을 위해 법인에서는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지리산 선교유적지 보존에는 곡절도 있었다. 지난 2007년 8월31일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지리산선교유적지를 철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단법인 지리산 기독교 선교유적지 보존연합은 1921년 노고단 예배당과 1962년 왕시루봉 수양관 건축물은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 건축물이기 때문에 마땅히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어 이를 반대, 보존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 단체는 2007년 12월3일 전남도청에서 사단법인으로 설립허가를 받아 현재 유적지 보존을 위해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사)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은 (사)도코모모코리아(근대건축보존회)와 2009년 11월 조사연구 용역을 체결하여 고증자료를 발간하였고 1895년 영국에서 시작된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한 세계적인 시민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 주최 ‘이곳만은 지키자’ 시민공모전에 참가하여 2011년도 ‘소중한 문화유산상’을 수상했다. 2015년 6월에는 국립공원을 사랑하는 시민의 모임 주최 지리산왕시루봉유적지 전문가 간담회가 구례 사회복지관에서 개최되었는데 전문가로 참여한 서울대학교 윤여창 교수는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하였다.

역사학자 이만열(전 국사편찬 위원장) 교수는 1921년 우리나라 한글 띄어쓰기 맞춤법 등 한글 문법이 선교사들에 의해 최초 탄생된 장소로 지리산선교유적지는 비단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유산임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에 대한 감회가 새롭다. 2006년 지리산자락에 자리한 하동 차문화센터 연구소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유적지 철거를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그후 선교유적지 보존의 중요성, 그리고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그 당시 생존자들을 추적하고 그 분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담은 영상 자료를 제작해서 배포했다. 결국 그 영상자료가 오늘날 마중물이 되어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됐기 때문이다.

‘백 년 전 세상을 탐하다’의 지은이 최예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파란만장한 격동의 세월을 견디며 살아남은 건축물이 얼마 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건축이 아름답고 가치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살아남았기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그 건축은 온몸으로 역사를 보여주고 시대를 증언한다.” 이번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근대문화유산을 잘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