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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하야’ 꽃보다 아름다운 그 이름

2016. 12.02. 00:00:00

박근혜 대통령이 ‘서면(書面) 보고’를 좋아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얼마 전 청와대가 비아그라 구입에 대해 해명했는데 “대통령이 항상 ‘서면 보고’ 하라고 해서…. 안 서면 보고를 할 수 없어서 샀다”고 한다. 누리꾼들은 “길라임 대통령이 구입해야 할 약은 ‘하야하그라’이지 ‘버티그라’가 아니라고 했다. 대통령이 요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닭’이나 ‘개’조차도 하늘에 오르는 계견승천(鷄犬昇天)의 시절이 낳은 희비극(喜悲劇)이라고나 할까.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태반주사’에 ‘백옥주사’ ‘신데렐라주사’까지 등장했다. 그동안 듣도 보도 못한 이 해괴한 ‘주사파’(注射派) 정권의 말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옛 고사(故事)에 “신하가 군주(君主)에게 죄를 지으면 용서해 줄 수 있으나 군주가 신하에게 죄를 지으면 영원히 사면되지 못한다” 했다.
촛불집회는 이처럼 대통령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민심의 표출이다. 주마다 집회가 계속되면서 기발한 가사의 대중가요가 군중의 힘을 결집하고 있다.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하야(下野)가 꽃보다 아름다워’로 바꿔 불러 박수를 받았다.
‘꽃바구니 옆에 끼고’로 시작되는 ‘아리랑 목동’의 ‘노가바’인 ‘하야가’(下野歌) 제2탄도 나왔다. 한번이라도 촛불 집회에 나가 본 사람이라면 귀에 설지 않을 터이다. “하야∼ 하야∼ 하야 하야 하야해/ 순실이를 옆에 끼고 말아먹은 박근혜야/ 거짓 사과 오리발로 제아무리 버텨도/ 동네방네 일어서는 국민들을 이길쏘냐/ 내려와라 당장/ 하야하라 당장/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려나 주세”
시국에 맞춰 새로 나온 노래도 있다. 윤민석의 ‘이게 나라냐 ㅅㅂ’이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멜로디와 가사로 대중의 요구를 하나로 묶어 냈다. 집회가 신문사 바로 앞에서 열리는 까닭에 자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에 붙은 그런 노래들을 흥얼거리면서, 오늘은 대중가요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봉선화’나 ‘아리랑’은 일제에 의해 금지곡이 됐다. 민족감정을 고취하는 노래였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박정희 독재 시대에 금지곡이 된 노래들은 그 이유가 참으로 황당했다. 사랑에 푹 빠진 한 남자의 마음을 담은 이장희의 노래 ‘그건 너’ 는 ‘남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배호의 ‘0시의 이별’ 은 그 시간에 이별하면 통행금지 위반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김추자가 부른 ‘거짓말이야’도 검열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 1971년에 발표된 이 노래가 금지된 이유는 불신 풍조를 조장한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박정희 정권은 단지 ‘사랑 타령’ 에 불과했을 유행가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둑이 제 발 저린 격’ 이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숱한 거짓말을 해 왔던 차였으니까.
71년 4월 장충공원 유세에서 그는 ‘이번이 마지막’ 이라는 거짓말로 지지를 호소했다. “나를 제2의 이 박사(이승만)로 만들 셈이냐”며 삼선개헌을 하지 않겠다던 말도 거짓말이었다. 앞서 쿠데타에 성공한 뒤,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정권을 이양하겠다던 민정이양의 약속도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때보다 훨씬 더한 ‘거짓말의 시대’ 에 살고 있다. ‘부전여전’(父傳女傳), 그 아버지에 그 딸인가. “찌라시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2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참 뻔뻔한 거짓말이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만든 것이 두 재단(미르·K스포츠)의 성격인 것으로 안다.” 사람들은 이런 말에 대해서도 ‘순실이 풀 뜯어먹는 소리’라며 비웃었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2차 대국민담화)라는 말 역시 담화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변호인을 내세워 끝까지 버티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당랑거철(螳螂拒轍)의 고사처럼 한 마리 사마귀가 거대한 수레를 대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앞발 치켜들고 막아 서 봐야 끝내 수레에 깔려 삶을 마감할 뿐이다.
몇 차례 대국민 사과마저 거짓이었음이 드러나면서 국민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이장폐천(以掌蔽天)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박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은 전혀 없다며 “이번 사건(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한 ‘경위’는 가까운 시일 안에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경위서를 쓰겠다는 말인 듯싶은데, 사표를 써도 시원찮을 판에 반성문도 아닌 경위서만 쓰고 넘어가겠다니 이게 될 말인가.
대통령은 왜 거짓말을 계속 해대는 것일까? 아마도 5천만 국민이 다 촛불을 들어도 권력을 내려놓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게다. 3차 대국민담화에서 말한 ‘국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것도 표면적으로만 보면 하야 가능성 언급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임기 중 물러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들린다.
말로야 임기 단축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이는 개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야권을 개헌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어 임기를 채우려는 저의가 숨어 있는 것이다. 결국 탄핵 세력의 분열과 함께 야권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만들 심산이었을 테고, 이는 당장은 성공한 듯 보이지만 어림없는 오산(誤算)임을 알아야 한다.
어찌 됐든 박 대통령은 국회에 공을 떠넘겼고 정치권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의외로 해법은 간단하다. 탄핵을 추진하는 한편 오늘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야 3당이 ‘하야 권고 결의안’을 통과시키면 된다.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면 되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협조 여부도 상관없다. 이렇게 해서 결의안을 통보하면 박 대통령이 거부할 명분은 없다.
대통령의 3차 담화는 국민의 분노만 더욱 키웠다.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니 이제 촛불은 횃불로 변해 타오를 것이다. 내일도 전국적으로 6차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너져 내리는 가슴 안고 또 광장에 몰려나와 한마음으로 노래를 부를 것이다. “우주의 기운 무당의 주술/ 다카끼 마사오까지 불러내어도/ 이젠 끝났다 돌이킬 수 없다/ 좋은 말 할 때 물러나거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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